- [살롱] 일상탐독 (19) 최승자/개 같은 가을이 바야흐로 가을이군요. 추석연휴는 잘들 보내셨나요. 저는 연휴 끝자락에 아울렛 매장에 들러 트렌치코트를 한 벌 샀습니다. 깃이 넓고 소매통이 좁은 롱코트인데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 썩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사들고 밤거리를 타박타박 걸어 집...김유경 기자 2016-09-21 10:47:07
- [살롱] 일상탐독 (18) 진은영/그 머나먼 K는 중견 예술가다. 나는 그를 몇 년째 알고 지내고 있다. 그는 내게 군더더기 없이 신사적이고 나 또한 그를 예술가로서 깎듯이 존중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자리에서, K는 조금 쓸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이렇게 ...김유경 기자 2016-08-26 16:05:15
- [살롱] 일상탐독 (17) 유안진/지란지교를 꿈꾸며J!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던 봄이다.아니지. 어느덧 여름 가까이, 그것도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가까워지고 있구나.우리가 준비도 없이 맞이한 서른두살의 나날들이 말이야.부옇고 탁하기만 했던 회색은 은은한 파스텔톤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온통 상큼한 연...김유경 기자 2016-05-13 14:26:49
- [살롱] 일상탐독 (16) 이언 매큐언/체실 비치에서
여기는 체실 비치(Chesil Beach)라고 불리는, 영국 도싯 주(州)에 있는 아름다운 해변입니다. 자잘한 자갈이 깔린 길이 해변을 따라 시원하게 나 있는, 영불해협이 내다보이는 해안이지요. 1960년 7월의 어느 날, 바로 이 체실 비치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김유경 기자 2016-04-08 14:17:19
- [살롱] 일상탐독 (15) 다자이 오사무/사양(斜陽)수십년 전, 하동의 어느 마을에 사방사업(砂防事業)으로 큰 돈을 번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사업수완이 탁월했을 뿐 아니라 용모도 멋들어졌고, 풍채도 좋았다. 형편이 넉넉하니 베푸는 씀씀이도 컸다. 어느 날 마을에 절름발이 여자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근본도 ...김유경 기자 2016-01-25 14:30:25
- [살롱] 일상탐독 (14) 황석영/오래된 정원여기 한 남자가 있어요. 이름은 오현우 입니다. 나이는 삼십대 초중반 정도. 그는 형사들에 쫓기는 신세 입니다. 지금은 군사독재 시절이고,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민주화 운동을 했거든요. 그는 자신이 수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밤, 어둠을 틈타 본가로 숨...김유경 기자 2016-01-06 18:13:42
- [살롱] 일상탐독 (13) 박지원/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
잠을 깬 건 새벽 4시를 막 지나던 참이었습니다.사방은 캄캄했고, 무엇하나 소리내어 움직이는 것이 없었습니다.겨울밤은 마치 두터운 적막을 품은 거대한 산 같이 느껴졌어요.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겁먹은 짐승처럼 이불 속에 움츠린 채 말이죠.옅은 ...김유경 기자 2015-12-18 14:20:44
- [살롱] 일상탐독 (12) 이성복/어떤 싸움의 記錄
나는 이미 독이 오를대로 오른 상태였다.
나는 어떤 결심 속에 있었다.
누가 그날 내 얼굴을 봤다면, 뱀의 눈처럼 차가운 눈동자 속에 단단하게 또아리를 튼 붉은 불빛을 보았으리라.
차례를 지낸 뒤 친지들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막 식사...김유경 기자 2015-11-19 14:12:02
- [살롱] 일상탐독 (11) 정지상/송인(送人)처음 그 아이를 본 것은 1997년 어느 겨울날이었다. 온나라를 극심한 혼란 속에 밀어넣었던 IMF 금융위기로 더욱 각박하게만 느껴지던 그해 겨울. 나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
나는 아침 나절부터 들떠있었다. 그 아이가 우리집에 온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수업...김유경 기자 2015-07-17 14:30:35
- [살롱] 일상탐독 (10) 김연수/청춘의 문장들무척이나 아끼는 책을 군부대에 두고 온 일이 있다.
아니다. 고의로 두고 오지는 않았으니 내 입장에선 잃어버렸다고 해야 옳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특별히 아껴 장만했던 책 몇 권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삭막한 군부대에 남겨진 건 사실이다.
...김유경 기자 2015-07-02 10:41:23
- [살롱] 일상탐독 (8)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2013년 10월 15일, 나는 낯선 대기 속에 있었다. 낯선 분위기. 낯선 사람들. 낯선 움직임. 그 곳은 분명 낯설었다. 나는 짐짓 쾌활하게 말했다.
내가 그 곳을 찾아간 이유에 대해. 그들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그러나 그들은 미동 하나 없이 각자 앞에 놓...김유경 기자 2015-06-18 14:07:18
- [살롱] 일상탐독 (7) 천운영/ 바늘수년 동안 많은 취재원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원들의 나이와 하는 일, 관심사는 모두 달랐고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기자를 대하는 태도도 각각 달랐다. 어떤 이는 돈을 찔러주려고 했고, 어떤 이는 맛있는 음식을...김유경 기자 2015-06-04 17:36:27
- [살롱] 일상탐독 (6) 하성란/ 웨하스로 만든 집
부모님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이 년, 저 년’ 소리를 듣는다. 사회부 기자로 살면서부터다. 처음엔 그 소리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서럽고 정수리에서 김이 나도록 화가 났는데, 웬걸, 이제는 내 맷집도 상당히 단단해졌다. 내게도 나름의 방도가 생...2015-05-21 14:32:38
- [살롱] 일상탐독 (5) 서영은/ 꽃들은 어디로 갔나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한 친구가 있다. 친구는 "어리고 예쁠 때 수저 한 벌 가지고 시집 갈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는데, 그 바람이 이뤄진 것 같았다.바야흐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광풍처럼 휘몰아친 2008년 무렵이었다. 나를 비롯한 대학동기...2015-05-07 14:09:34
- [살롱] 일상탐독 (4) 최영철/ 일광욕하는 가구며칠 전, 속절없이 가버리는 봄이 아쉬웠던 동료들 사이에서 '뭐라도 하자'는 말이 나왔다. 그날 회사를 파한 뒤 십여명이 우르르 몰려간 곳은 대형마트를 마주한 도로변의 밥집 겸 술집. 가정집을 개조한 그 허름한 집은 번화가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덜컹대는 목재...김유경 기자 2015-04-23 10: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