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5) 창녕 남지 유채밭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꽃물결이네
유채의 강낙동강 철교 아래에 서서유채꽃을 키우는 강을 보고 있다누구를 탓하랴마는세상의 물결이 둑을 넘는 바람에제방을 쌓고 꽃을 심어봄의 기지개로 노란 지평선 가꾸고청보리 튤립까지 품어너른 품으로 산을 감싸 안아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꽃물결이네영혼마저 초월한 꽃송이들꽃향기로 찍어내는 가족사진 옆향기에 취해 덩달아 돌아가는 풍차바람개비가 감탄사로 춤을 추고꿀벌과 나비는 먼저 안다아픈 상처 다독이고 봄을 키워내는강물의 깊은 뜻낙동강 철교 아래에 서서유채...2021-04-15 20:58:59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4) 창녕 우포늪살아있는 모든 것이 호들갑 떠는 곳
낮게 엎드린 마을 들머리
중늙은이 하나 소를 몰고 지나간다
물방개와 가시연꽃 그림자를 밟으며
비닐 돗자리를 든 아이들이 통통거리는 오후다
발길마다 폴폴 이는 흙먼지에 아지랑이가 어리고
길섶 풀더미엔 이름 모를 꽃들이 얼굴을 열었다
몇 굽이 들길을 돌아 흐르는 봄기운에
만 년 뻘의 깊이를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듯
부산을 떠는 벌과 나비가 시간을 섬기고 있다.
흙 좋고 넓은 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철석같은 저 원시의 등짝은
아직도 진화를 멈추지 않았는데
물 좋고 산 좋으니 마음 급할 게 없다
먹이...2021-04-01 20:54:07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3) 사천 대방진굴항동그랗게 말린 바다의 자궁
물결도 암호를 대고 드나들고 햇살도 검문을 받고 내려앉는 곳
밖이 잘 보이는 안이 있다
안을 숨기고 밖을 살피기 좋은 곳
해수의 꼬리가 동그랗게 말린 바다의 자궁
진주목 관하 백성이 돌 둑을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대방진굴항
그곳에 이백 년이 넘도록 보초를 서 온
척추가 굽은 노병 팽나무가 있다
세상에 소중한 걸 지키기 좋은 ...2021-03-18 20:37:20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2) 산청 대원사굽어진 돌계단서 죄 짓는듯 걷는다
갈 수도 있었던 길 - 산청 대원사에서
방장산 계곡 물소리를 업고 걸었다 굽어진 돌계단 입구를 들어서니 어쩌자고 절 마당에 파쇄석을 깔았을까 어지러운 생각 마냥 적요 깨는 발소리 죄 짓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대웅전 뒤편 언덕 홀로 앉은 저 비구니 함께 출가 맹세했던 그날의 단발머리, 아닌 줄 알지만 힐끔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합장하...2021-03-04 20:52:50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1) 창원 동판저수지흘러가야 할 것들은 흘러가고 머무는 법이 없었다
네가 나를 늪이라 부를 때
흘러가는 구름을, 강물을, 바람을, 동경하였다
그것들을 담아두려고 아니, 가두려고
스스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흘러가야 할 것들은 흘러가고 머무는 법이 없었다
갇힌 건 아니, 가둔 것은 썩고 문드러져
마침내 제 처음을 잊어버린 늪뿐이었다
나의 늪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 같아도
한순간도 같지 않았...2021-02-18 21:13:28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0) 창녕 만년교온갖 시련 무심히 흘려보내는 보살 같은 다리
만년교
이름값 하기에는 아직 구천 수백 년이 모자라는
지나온 만 번 보다
다가올 수십만 번 더 무거운 짐을 감내해야 하는
보살 같은 다리가 있다
시대의 불의에 죽음으로 맞선 이들
가난을 홑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이던 이들
목말 태우고 건너주느라
이제는 곱사등이가 되어
이끼마저 저승꽃처럼 핀
꿈을 건네준다 해서 더러는
무...2021-02-04 20:35:04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9) 고성 갈천서원세상 사는 일, 다 칡넝쿨 같아서…
갈천(葛川)
세상사는 일이야 다 칡넝쿨 같아서
구름은 구름길을 가고요
시냇물은 시냇물대로 제 물길을 가지요
세상사 다 그 이어짐도 칡넝쿨 같아서
아버지의 말씀이 그 아들에게
어머님의 말씀이 그 딸에게
구름이 구름길을 가듯이
시냇물이 그 물길을 이어 가듯이
푸르고 푸른 넝쿨 이어가는 것 아니겠어요
한 세상 청산(靑山)에 묻혔다 해도
그 속에...2021-01-21 20:04:30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8) 거창 수승대거북등 올라 술상 받고 구름이 흘려놓은 시 구워 먹으리
구시가(求詩歌)
온몸에 시를 갑주(甲胄)로 두르고서
잔뜩 도사린 채
또 무슨 시를 기다리는가
단 한 편의 시도
아니, 한 구절조차도
내어놓지 않을 태세
허나 오늘만은 기필코
네 몸에 두른 시 한 편 받아 가리니
거북아 거북아 시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네 등허리에 올라 술상을 받아놓고
바람이 실어온 시 한 편은 술잔...2021-01-08 08:03:35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7) 마산 서원곡 관해정아름드리 은행나무 목 늘여 바다를 본다
관해정(觀海亭)
큰 뜻을 품는다는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일
바위에 부딪혀 돌고 도는 개울물이
새 떼 소리처럼 때로 천둥소리처럼
숲속 계곡을 들썩인다
노란 은행잎 하나 놀라서 떨어지고
잔 띄워 시를 읊던 선비여
금잔이 굽이치거늘 무엇하는고
아름드리 은행나무 목을 늘여 바다를 본다
엄마 품 같은 두척산 옹달샘
새벽을 여는 기침 소리
시서(詩書) 강...2020-12-15 07:59:41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6) 하동 쌍계사 일주문하루를 한 시간에 사는 저 붉음의 뜨거움이라니
쌍계사 단풍
마크 트웨인은 인간만이 얼굴을 붉힐 줄 안다고 했지만
盛夏의 푸르름과 열병을 삼킨 속앓이가 얼마나 컸으면
저리도 붉은 마음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걸까
부끄러움은 장미보다 강렬한 매혹의 홍조를 띤다는데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한 코로나 파시즘 우산 아래
정의와 공정의 이파리들이 측은지심을 흔들고 있다
감히 손을 댔다간 늑골 아래 큰 상흔을 ...2020-12-01 08:01:46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5) 산청 남사예담촌 부부 회화나무내 휘우듬한 허리 안아주던 이, 당신이었나
그래요, 당신
당신이었나
기울어가는 어깨를 받쳐주고
휘우듬한 허리를 안아주던 사람
당신이었을 것이다
내 눈물이 적신 무명옷자락으로
팔베개 내어주던 그 온기는
당신이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나의 기척을
멀리 혹은 가까이서 살필 눈길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영영 눈 감는 그날
꽁꽁 언 내 손 잡아줄 한 사람
그래, 당신이다
몇 백 년이 ...2020-11-17 08:03:52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4) 함안 이수정화가도 물감도 담지 못하는 바람의 자화상
햇살이 세필로 그린 바람의 자화상
까칠한 맨살의 바람
저 질감은 필시
화가의 솜씨가 아니다
수시로 변하는 풍광도
괴산재 앞마당 뒹구는 낙엽도
물감의 혈색이 아니다
숙성 잘된 수정과
계절에 젖 물린 이수정
무진한 저 맛도
사람의 입맛이 아니다
그러니 그냥 걷자 말없이
홍예교 지나 영송루가면 보겠다
...2020-11-02 21:20:51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3) 고성 연화산 옥천사 일주문(경상남도 기념물 제140호)이름 없이 가뭇없이, 피안으로 드는 길은 아득하여라
그승
피안으로 드는 길은 아득하여라
이승 넘어 그 너머에
저승이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 그승에는
첩첩 알 수 없는 골과 골이 있어
꽃 피었다 지는 그 사이가 있어
마음 하나 올곧게 세워 한 평생
앞만 보고 걸어도 발밑은 늘 허방이어서
세상은 뜬구름 같기만 하였어라
빛의 그늘만 같았어라
그승,
바람의 집 한 채 품은 그곳에 들어
이...2020-10-19 21:48:29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2) 산청 ‘전 구형왕릉’(대한민국 사적 제214호)사라진 가락의 뒷모습, 돌무덤으로 남았네
풍장風葬
누가 당신 이름 앞에 비운이라 써놓고
아직도 돌무덤에 가두어 두고 있는가
화개골 끝 지나, 당신
천화遷化*의 길 떠난 지 오랜데
풀씨 하나 품지 못하는 일곱 계단 행간
천오백 년의 전설 위에 무얼 더 얹으려
그늘에 잠든 당신을 호명하는가
어깨걸이 느슨한 막돌들의 폐허 위로
물증은 허물어지고 심증만 쌓이는데
역사의 무대에서 퇴...2020-10-05 21:15:39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 (1) 고성 서비정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3-1-6호)나는 책속에 묻혀 詩속에 숨어 산다네본지는 기획 ‘시와 함께 보는 경남의 명소’를 이번 주부터 2주에 한 번씩 연재한다. 이번 기획은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후속으로 김관수 사진작가의 사진에 문학운동단체 ‘하로동선’ 동인들의 시를 입혔다.
현재 경남사진학술연구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관수 사진작가는 ‘늪’, ‘공즉시색- BALI’, ‘비감비경’,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도록’ 등 다수의 사진집을 발간했고, ‘하로동선’은 도내 중진작가들이 중심이 된 문학단체로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도내 구석구석 역사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소를 마음을...2020-09-21 20:5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