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금(海琴)에 기대어- 고두현
그리움 깊은 밤엔해금을 듣습니다.바다 먼 물소리에천근의 추를 달아끝없이 출렁이는 슬픔의 깊이재고 또 잽니다.유난히 풍랑 많고 한류 찬 물밑 길상처에 소금 적시며 아득히 걸어온 그대물살 센 한 생애가이토록 쿵쾅이며물굽이 쳐 아픕니다.☞ 그대, 바다에서 ...2015-12-17 07:00:00
- 아프다가- 차한수
섬이 아프다 아프다가 우는 물새 바라보면울음이 아프다 철석이는 파도가 아프다 돌 틈에 고개 내민 방게 반짝이는 눈빛이 젖는다젖은 동자가 아프다 물속을 나는 날갯죽지가아프다가 물이 되는 바람이 되는아픔이 웃다가 혼자되는 것을 아프다가 ☞ 요즘 들어 가장 소외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픔’이 아닐까? 건...2015-12-10 07:00:00
- 청춘 4- 진은영
자신의 핏속에서만 용감하게 달리던 흑기사가 있었다그때 아홉 개 조각난 얼음에 찔린 듯그때 뜨겁고 붉은 입속에서 찌르던 것들 사라졌다말할 것이 많았다 말할 것이없었다모든 것이 행동으로 환원되었다검은 벽검은 별과검은 병이 뒤척이던향기 나는 몸뚱이의 지진그때 모든 이들은 노래할 이유가 없었으므로그...2015-12-03 07:00:00
- 등꽃- 김명인 내 등꽃 필 때 비로소 그대 만나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어깨에서 가슴께로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2015-11-26 07:00:00
- [독자 시] 어느 지인의 그림 앞에서- 박동소(함양군 함양읍) 가녀린 붓끝에 전해진집념과 정성이문외한의 혼을 깨워발길을 붙들고숨죽인 순간들먹물 머금은붓끝이 토해내는수많은 점과 선들의 하모니국화꽃으로 환생하고저곳이영광의 선택!화룡점정의 자리였던가?노심초사붓끝에 모아진그 간절한 소망들때맞춰 울기만 하는 소...2015-11-25 07:00:00
- 혜화동, 검은 돛배- 박정대
아름다운 기억들은 폐허의 노래 같다오후 5시의 햇살은 잘 발효된 한 잔의 술가로수 잎들을 붉게 물들인다 자전거 바큇살 같은 11월그녀는 술이 먹고 싶다고 노을이 지는 거리로 나를 몰고나간다 내 가슴의 둔덕에서 염소 떼들이 내려오고 있다둥글게 돌아가는 저녁의 검은 레코드,어디쯤에선가 거리의 악사들이 노...2015-11-19 07:00:00
- 밤비- 오세영밤에홀로 듣는 빗소리비는 깨어 있는 자에게만 비가 된다.잠든 흙 속에서 라일락이 깨어나듯한 사내의 두 뺨이 비에 적실 때비로소 눈 뜨는 영혼.외로운 등불 밝히는 밤소리 없이 몇 천 년 흐르는 강물.눈물은 뜨거운 가슴 속에서만사랑이 된다.☞ 꿈은 때로 나룻배가 된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시간의 저쪽 언덕으...2015-11-12 07:00:00
- 유년幼年 - 김바다 생각하는 사람이 청동 어깨를 빌려주었다뺨을 기대고 같이 텅 빈 운동장을 내려다보면담 너머 세병관洗兵館이 보였다아무도 몰래세병관洗兵館 흙바닥을 파보고 싶었다거대한 창과 칼이 묻혀 있다고 들었기에유년幼年의 한낮매미처럼 브론즈에 붙어챙챙 쇠붙이 소리...2015-11-05 07:00:00
- 금정산 바람 되어- 김정자
산 그림자처럼 서늘히 생명의 통증을 가셔주던오욕의 인생 천사의 삶이라 보듬어 주던그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나요금정산 꼭대기 바람 되어해와 달 노래하며 떠돌고 있나요들녘은 소리 없이 저무는데‘무지개 저 너머’ 세상 그리워서둘러 먼길 떠난 맑은 혼이여새록새록 보고 싶은 눈물 도는 하늘가여☞ 벽돌로 반듯...2015-10-29 07:00:00
- 그 꽃다발- 정현종
마추픽추 산정山頂 갔다 오는 길에무슨 일인지 기차가 산중에서한참 서 있었습니다.나는 내렸습니다.너덧 살 되었는지(저렇게 작은 사람이 있다니!)잉카의 소녀 하나가저녁 어스름 속에 서 있었습니다.항상 씨앗의 숨소리가 들리는어스름 속에,저 견딜 수 없는 박명 속에,꽃다발을 들고, 붙박인 듯이.나는 가까이 가...2015-10-22 07:00:00
- 인디언 전사처럼- 정끝별
말은 달리다 숨이 차면 제 목을 물어뜯어끓는 피들을 풀어놓는다지숨차게 달리는 말 잔등에 재빨리 올라칼날처럼 바람을 가르며저 거친 벌판을고삐도 재갈도 안장도 다 내던지고바람조차 눈치채지 못하게편자도 말머리도 마침내는말꼬리도 없이 달려봤으면머리에는 새털을 꽂고얼굴에는 바람 자국을 새기고말 뱃가...2015-10-15 07:00:00
- 돌- 이재무
모름지기 시인이란 연민할 것을연민할 줄 알아야 한다과장된 엄살과 비명으로 가득 찬페이지를 덮고새벽 세 시 어둠이 소복이 쌓인적막의 거리 걷는다 잠 달아난 눈 침침하다산다는 일의 수고를 접고살 밖으로 아우성치던 피의욕망을 재우고 지금은 다만,순한 짐승으로 돌아가 고른 숨소리가평화로운 내 정다운 이...2015-10-08 07:00:00
- 시인 지렁이 씨- 김소연
가늘고 게으른 비가 오래도록 온다숨어 있던 지렁이 씨 몇몇이 기어나왔다꿈틀꿈틀 상처를 진흙탕에 부벼댄다파문이 인다시커멓고 넓적한 우주에서이 지구는 수박씨보다 작고,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지렁이 씨의 꿈틀거림도 파문을 만든다광활한 우주를 지름길로 떠돌다 돌아온 빗방울에는한세상 무지렁이처럼 살다 ...2015-10-01 07:00:00
- 시·5 - 나태주
산문은 100사람에게한 번씩 읽히는 문장이고시는 한 사람에게 100번씩읽히는 문장이라는데어쩔 거냐?시가 나에게 묻는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섬김은 ‘말’이 아닐까요? 선물이나 뇌물처럼 부담을 안아야 하는 것도, 부채의식을 짐 져야 하는 것도 아닌, 스스로와 상대에게 가장 선한 모심은 참으로 말, 그것이지 않...2015-09-24 07:00:00
- 무릎 꿇는다는 것- 김일태
밭고랑에 둥글게 허리를 말아평생을 무릎걸음으로 호미질 하던 어머니몸 세워 건성건성 일하는 내게 이르셨지사람이 무릎을 세우면땅이 호미 날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힘만 더 든다고시름시름 얘기 나누면서맨살로 궁굴어야 한다고가을바람에 무릎 꿇고 허리를 낮춘 쇠비름 노란 꽃그 꽃 한 송이를온몸으로 꽉 ...2015-09-17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