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소환하다 - 김승강
어제는 아재가 갔다아재는 어제의 바깥그때갔다는 왔다의 미래였다도대체 아재는 누구지?아재는 모든 소년의 미래나는 한때 소년이었다어제를 거쳐 아재를 지나왔으므로나는 지금 바깥이다어제의 첫날왔다에서 갔다를 향해 기차가 출발했다오늘을 달리는기차의 맨 끝 같에서어제 속으로 뒷걸음질 치며 달려오는 풍경에게악수를 청했지만손이 닿지 않았다아재는 늘 한발씩 늦었다☞ 유행이란 곳곳에 있다고 봅니다. 옷이나 머리모양뿐만이 아니라 요즘 자주 사용되는 ‘아재’가 그렇습니다. ‘아저씨’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지만 이...2017-07-06 07:00:00- 유기견을 만나다 - 윤덕점
비 오는 아침 현관문을 열다 유기견한 마리를 만난다비 맞고 절뚝이며아랫마을에서 우리 집까지 온 것사료 한 줌 건네며 등을 만지자민감하게 따라오는 적의그가 걸어온 낮고 험한 시간 탓이리라어쩌면 전생 내 살붙이였을지도 모를 그놈흔들리는 눈동자에 묻은불안 사이로 비는 계속 내리고밥 다 먹고도 자릴 뜨...2017-06-29 07:00:00
- 에베레스트 맨발 - 배종환
그곳에 가고 싶다한번 입으면 벗지 못하는 옷걸친 옷이 전부인 맨발 같은 마을맨발의 짐꾼버리지 못하는 신발어느덧 서글픈 신발이 되었다가득 담아언제 갈 수 있을까☞누구나 여행을 좋아할 것이란 전제하에, 여건이 허락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여행지를 골라 떠날 수 있음은 또 얼마나 축복이랴. 각자가 선택한 여...2017-06-22 07:00:00
- 기다란 팔 - 문복주
누가 나를 안을 때나는 기다란 팔을 생각한다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폭 안고 캄캄한 세상을 건너내가 눈을 떴을 때놀라운 세상이 나타나는 기다란 팔을 가진 사람기다란 팔과 날개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다나는 지금도 잠자면서 기다란 팔을 가진 사람이나를 안고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을 꿈꾸며 잔다숨쉬기도 힘들...2017-06-15 07:00:00
마 산다 - 이영자
예전에 한 친구가 물었다어디서 어떻게 사냐고마 산다고 대답했다요즈음 친구가 물었다지금도 마산에서 사냐고떠났어 벌써 떠났어떠나지 않고는 모를그리움 쌓으며 산다고 했다구차하나 남루하지 않은 선비네 종가그가 준 것은구워도 삶아도 변함없는 날것의 풋내재물 말고 사랑이었나니친구야 듣느냐이래저래 마 산다☞ 시인은 젊은 시절 마산에서의 삶이 있었다. 요즈음은 지리산 자락 동네인 산청에다 터를 잡고 산다. 이런 시인에게 어느 친구가 안부를 묻기에 마 산다고 했단다. 역시나 시인이다. 아니 누구나 이렇게 대답은 ...2017-06-08 07:00:00
망산의 한낮 - 이원명
찬연한 봄날동백꽃 어우러진산길을 걸으면햇살에 살포시 내려앉은볼우물 담은 노란 양지꽃현호색의 보드레한 종소리를 듣는간드러진 각시제비꽃사뿐히 고개 내민 샛별 같은붉은점박이개별꽃노랑 하양 분홍노루귀의가마득한 어질증발그름한 복주머니 개불알꽃의호방한 씀씀이봄처녀의 이른 나들이에저마다의 꽃등을 켜는망산의 한낮☞ 시인은 어느 봄날 망산을 올랐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여러 봄꽃을 만납니다. 양지바른 곳에서 활짝 웃으며 피어나 ‘사랑스러움’이란 꽃말을 가진 노란색의 양지꽃도 보고, 꽃이름 치곤 특이한 현...2017-06-01 07:00:00- 10년 - 고영조
박토에씨를 뿌린답시고10년을 달려왔던문학선생 노릇을 그만두었다가르칠 것도가르쳐야 할 것도 없는詩 쓰기돌을 들고 돋는 풀이나새소리나 들으라고문득 손을 놓았다부끄러워라! 부끄러움을 아는데10년이 걸리다니☞ 평소의 성정(性情)답게 시인은 ‘10년’이란 작품에서도 치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토인 문학의...2017-05-18 07:00:00
- 부처고기 같은 - 김일태
어미 하나 있었네맛없이 살다 간제 속에 여섯 새끼 꽁꽁 품어혼자 살아갈 만치 키워 세상 내보내고는휘휘 제 세상 한번 헤엄쳐 둘러보지도 못하고홀쭉해진 한 생 막바지 뜬눈으로 돌보던새끼 하나 먼저 보내고못 진 가슴 기진맥진하다가괭이갈매기 새끼 먹이로 물려 간 망상어같이저승으로 선뜻 채여 간어미 하나 있...기자명 기자 2017-05-11 07:00:00
희망 사항 - 장진화 -엄마, 나 동생 말고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 나 언니 말고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만났다 하면 티격태격 옥신각신 다투는 우리 둘 번갈아 보던 엄마-나는 너희가 내 엄마면 좋겠어☞ 5월입니다. 일 년 하고도 열두 달 중, 5월만큼이나 예찬에 예찬을 보태는 달이 또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단연 ‘가정의 달’이 제일 먼저이지 싶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등에 어쩜 날씨까지도 찬란한 이 5월을 빛내주고 있는지….‘가정의 달’을 맞이해 이번 주에는 소박한 생활시(?)격인 동시를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작...2017-05-04 07:00:00
봄바다 - 유행두
노점에서 얻어 온 생선 대가리
어머니 앞에 조르르 누웠다
고양이 밥 될 이놈들
댕강댕강 잘리지 못한 내장이 불거져
아직도 마감 못한 핏물이 묻어 있다
성깔 못 이겨 눈알 빠져 없는 놈
사팔뜨기 눈으로 딴청 부리는 놈
아직도 이빨에 낚싯바늘 끼운 채
헐떡이는 아가미 잠재운 놈
흰 눈 동그랗게 빼물고 노려보는 놈
등줄기 푸른 바다 질퍽한 비린내에 쓰러지던 날
어머니 못 보셨나
낚싯바늘 끼우고 올라오던 놈
찌그러진 양은 냄비 수증기 속에서
내 숟가락 따라 올라오던 바다
☞ 이 작품은 처음...기자명 기자 2017-04-27 07:00:00- 옥수수를 심으며 - 민병권
옥수수 씨앗을 심으며옥수수가 나리라 믿는 것은 내 마음이지옥수수의 마음은 아니다나는 옥수수를 심고 기다리면 된다누가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것은 내 마음이지그 사람 마음이 아니다옥수수를 심으며 나는 믿는다하늘을 믿고 땅을 믿고 옥수수 씨앗을 믿는다믿는 것은 내 마음이지옥수수의 마음은 아니지만내가 ...2017-04-20 07:00:00
- 때로는, 나무 - 하영봄바람에 꽃잎이 날리듯그렇게 날고 싶을 때가 있다그렇게 아름답게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다사랑한다 사랑한다한없이 속삭여 놓고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돌아서고 싶을 때가 있다한 번쯤은 누구나그렇게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가지가 한 뼘씩 빛을 쫓아가면뿌리는 한 뼘씩 어둠 속을 파고들 듯이☞화사하게 피어 아름...2017-04-13 07:00:00
- 난장에 - 박성남
봄의 난장에서꼼짝 못하게 꽃물에 가두고는번짐의 유혹으로 마음을 빼앗더니꽃 번짐 멈춘 순간눈사태 지듯 한꺼번에 무너져꽃 몸살로성장통을 앓게 하는 너어디 꽃 핀다고, 다 열매 맺던가한바탕화사하게 웃었으면 황홀한 일, 잠시이 세상 눈 맞춤이가슴 벅찬 순간인 것을☞그야말로 봄은 꽃의 난장입니다. 이런 때에...2017-04-06 07:00:00
금어초-세월호 영령을 위하여 - 주선화 너는 예뻐예쁘니까 꽃이지사람은 예뻐예쁘니까 사람이지예쁜 것은 세상의 진리와 가치붉은 꽃은 붉게노란 꽃은 노랗게흰 꽃은 희게저마다의 얼굴로 한껏 피어올라금붕어보다 아름다운 꽃문득, 꽃 지고 해골이 되다니흙바람 속에 흙처럼 검은 얼굴 같은주검의 바다도 차마 씻어내지 못해금붕어보다 아름다운 꽃 진다시들지 마, 금어초금어초란 꽃이 있습니다. 본문에도 있으나 흰색이거나 노란, 붉은색을 가진 꽃은 금붕어의 입 모양 같다고 하여 금어초라 불립니다. 보통의 여리디여린 꽃이라 여겨질 법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놀랍게...기자명 기자 2017-03-30 07:00:00- 부끄러움에 대하여 - 김선민
포장마차에서소주 한 잔에라면 하나로 허기를 푼다안주는 보잘것없지만 부끄럽지 않다정작부끄러운 것은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할 말을 삼키는 비겁한 짓진정 부끄러운 것은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얼음 같은 마음이다마음을 덥히는 술 한 잔라면 하나로허기진 세상을 채워본다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에...2017-03-23 0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