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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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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길] 거창 서출동류와 함께 걷는 길

경남의 길을 걷다 (33) 거창 서출동류의 물줄기와 함께 가는 길
서쪽에서 동쪽으로 굽이치는 물줄기 따라
물소리 바람소리 반기는 계곡길 걸어보세

  • 기사입력 : 2011-09-2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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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눈이 흩날리는 듯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분설담.
     
    길을 걷다가 지칠 때면 언제라도 땀을 식힐 수 있는 시원한 계곡이 펼쳐져 있다.
    인도가 없어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는 국도.


    서쪽에서 생겨나 동쪽으로 흐르는 물. 이를 서출동류라 이른다. 대부분의 샘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그렇기에 평범치 않은 서출동류는 예부터 귀하게 여겨졌고, 영험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경남에도 서출동류가 있다. 덕유산 삿갓골 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거창이다. 이곳 거창에 자리 잡은 월성계곡을 따라 서출동류와 함께 걷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길은 시원한 계곡줄기를 따라 오른다. 곳곳에 자연적,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볼거리가 많아 심심치는 않은 코스이다.

    그럼에도 길을 소개하기 전 분명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이곳을 걷기 좋은 길로 소개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경남도에서 지정한 경남의 걷고 싶은 길에 선정된 코스라 독자들에게 소개할 요량으로 이곳을 찾았으나 직접 걸어보니 기대보다는 오히려 실망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코스 시작부터 종료 지점까지 안전한 보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거의 전 구간을 아스팔트 국도 위로 걸어야 한다. 차량 통행이 활발한 이곳 도로에는 사람의 왕래가 용이할 만큼 인도가 없어 교통사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어 진행하는 차량의 시야 확보도 쉽지 않아 보였다. 자칫 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앞서 걷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됐다.

    쉽게 무더위가 가시지 않던 9월 중순.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와 위험천만한 도로를 직접 걸었다.

    코스의 시작은 거창 북상면사무소이다. 도착지인 황점마을까지는 약 11㎞. 4시간가량 쉼 없이 걸어야 하는 짧지 않은 구간이었다.

    황점마을에는 오전 7시10분, 오전 8시45분, 오전 10시35분, 낮 12시5분, 오후 2시45분, 오후 6시30분에 북상면사무소를 향해 출발하는 마을버스가 있다.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황점마을에 도착하면, 버스로 북상면사무소에 되돌아올 수 있다. 마을버스 시간을 맞추기 힘들 것 같아 코스 종료지점인 황점마을에 타고 온 승용차를 세워놓고, 버스로 북상면사무소로 내려와 시작지점부터 걷기로 했다.

    수승대가 가까운 북상면사무소에서 농산마을 방향의 아스팔트 도로를 걸었다. 조금 걸으면 북상교가 나오는데, 이를 지나면 양쪽으로 늘어선 가로수 길을 만난다. 출발부터 거의 계곡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약 20분 걸으니 강선대교가 나왔다. 잠시 강선대교 위에 섰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맞으니 온몸에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이 금방 말랐다.

    10분이나 더 걸었을까. 허브농장인 민들레울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안으로 들어섰다. 허브향이 코끝을 찔렀다. 계곡변에 들어서 있는 이곳에선 시원한 계곡 물줄기 소리와 허브향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민들레울을 나와 뜨거운 태양과 달궈진 아스팔트에 다시 섰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코스를 따라 힘차게 흐르는 서출동류의 계곡은 걷는 이의 마음을 시원히 적셔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코스는 계곡의 상류지점을 향하기 때문에 계속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가는 중간 중간 밤나무, 미루나무 등이 도로를 따라 서 있어 가로수 역할을 했다. 다양한 수목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코스에서 느끼는 작은 재미가 될 듯하다.

     
    한결고운갤러리.
    월성계곡 명소 중 하나인 사선대. 큰 바위가 4층으로 포개져 있는데, 꼭대기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탐방 코스 중간에 자리 잡은 정자.
    허브농장 민들레울.


    맑은 계곡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 좀 넘게 걸으니 창선마을이 나왔다. 마을 앞 창선교를 건너면 ‘한결고운갤러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서는 조각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한 20여 분 정도 더 걸었다. 월성계곡의 명소인 분설담 앞에 섰다. 분설담 안내표지판에는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의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듯해서 분설담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분설담의 이름 유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 분설담 주변 계곡에 자리 잡은 바위의 표면이 하나같이 하얀 가루가 뿌려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눈의 모습과 매우 비슷해 보였다. 공식적이진 않지만 계곡 주변 암반의 독특한 모양새가 분설담이란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분설담에서 얼굴도 씻고, 잠시 땀을 식혔다. 시원한 계곡과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반듯하고 널찍한 바위가 ‘낮잠 즐기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도록 했다. 그러나 갈 길이 멀어 신선놀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걸었다.

    조금 오르니 사설 자연휴양림인 주은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휴양림 안에서는 월성계곡의 또 다른 명소인 장군바위를 바라볼 수 있다. 진재 김윤겸의 진경산수화첩에 그려진 장군바위는 당시의 아름다운 경치를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자연휴양림을 지나 20분가량 걷게 되면 월성마을에 도착한다. 월성마을은 이 코스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마을 앞으로 커다란 계곡이 펼쳐진 월성마을. 달빛이 곱고, 별빛이 고와 ‘월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월성마을은 각종 체험프로그램과 민박 등 농촌체험마을로 운영되고 있어 여름철 인기 있는 피서지 중 하나이다.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수 하나를 구입해 목을 축이니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다.

    편의점 평상에 걸터앉아 길을 걷는 이들을 맞이한 마을 주민들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신문기자란 이야기에 “월성마을 좀 잘 소개해 달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부탁 아닌 부탁에서 정겨움이 묻어났다.

    월성마을을 지나고 내계대교, 월성수련교를 차례로 지나서 30분가량 걸으면 깊은 계곡의 한 갈래를 만난다.

    명소인 사선대가 눈에 들어왔다. 사선대는 큰 바위가 4층으로 포개진 암반이다.

    너른 바위의 꼭대기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만큼 과거부터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신비로움을 전해왔다. 넓고 두터운 바위가 층층이 쌓인 사선대의 웅장함에 잠시 취해 봤다. 그 웅장함에서 스스로를 간신히 추스른 후 다시 걸었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거의 마지막 코스.

    사선대에서 20분 정도 걸었을까. 새로 조성된 듯한 황토펜션단지가 나타났는데, 여름 피서지로서 월성계곡의 인기를 짐작게 하는 광경이었다. 펜션단지를 지나면 조금 가파른 길이 드러나는데, ‘아… 힘든 코스가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거리가 길지 않아 쉽게 이곳을 지났다. 언덕을 넘어서니 눈에 익숙했던 마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다. 오전에 마을버스를 탔던 황점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동네 한가득 들려오는 시원한 계곡 물줄기 소리에 땀도 마음도 금세 식어버렸다.

    글= 이헌장기자 lovely@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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