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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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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 김임지(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1-10-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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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 나라에 오디션 바람이 불고 있다. 연기자나 가수 지망생뿐만 아니라 마니아층이 두둑한 실력파 가수들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서고 있고, 얼마 전에는 방송국 신입 아나운서까지 공개 오디션을 통해서 선발했다.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가수와 연기자가 꿈인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 지구촌 구석구석에 이렇게 많았나 싶어 놀라게 된다. 열기로만 본다면 진작 생겨서야 할 대국민 구제 프로그램 같다. 하지만 시청률 때문에 방송국마다 다투어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같아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요즘 아이들 꿈을 물어보면 몇 가지로 단출하게 나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정보 부족이 큰 원인이 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다수의 정보를 대중매체를 통해서 얻는다고 본다면 텔레비전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런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직업이나 삶이 한정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꿈 꿀 수 있는 것도 딱 그만큼이라는 얘기다.

    사실 대중매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굴러가게 하는 것도 이런 엔터테이먼트의 힘이지 않은가. 거대 자본은 점점 몸집을 불리고 아이들의 꿈은 그만큼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쨌든 펼쳐진 마당에서 자신의 것을 한껏 드러내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은 참 크다. 한참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무대에 선 것처럼 긴장도 하고 심사를 맡은 사람처럼 냉철해지기도 한다.

    참가자들의 순수한 열정과 자유로움 뒤에 숨은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텔레비전 속 세상이 따로 없이 바로 내 삶의 일부분까지 들어온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진심과 기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실력보다는 참가자의 마음가짐과 노력에 응원을 보내기도 하고, 실력은 뛰어나지만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거나 겉멋이 든 사람한테는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심사자들도 그런 사람한테는 점수를 많이 주는 것 같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기본과 진심은 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기본, 이 말은 나를 항상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바로 이 순간에도.

    얼마 전에 문화센터에서 하는 기타 강습에 등록했다. 오전 시간에 딱 한 자리만 남았다고 해서 서둘렀다. 직원이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에 기타 강습반이 인기가 좋다고 말해 주었다. 나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부채질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기본에 대한 반성과 회의가 더 컸다.

    결혼하기 전에 기타를 조금 배웠다. 딱 폼만 잡을 정도여서 실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10년 넘게 잠을 자고 있던 기타를 보면서 기본을 넘어선 실력을 갖추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선생님도 그에 맞게 지도해주리라 기대를 했는데, 나는 처음 배우는 사람과 나란히 앉게 되었다.

    기타 선생님은 내게 가장 기본이 되는 운지법부터 시작하게 했다.

    속으로 ‘저, 조금 치거든요.’ 내뱉지 못한 속말을 기타 선생님이 알아들었다.

    “운지법이 기본입니다.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기본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진도만 나간 걸 선생님은 단번에 알아 본 것이다.

    딩딩 딩딩, 뎅뎅 뎅뎅. 나는 약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짚어 갔다. 딩딩 딩딩, 뎅뎅 뎅뎅. 그런데 기타 줄을 하나하나 짚어 가는 운지법을 통해서 내 나쁜 버릇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욕심을 버리고 하나하나 짚어 나가니 평소에 잡기 어렵던 코드가 편안하게 잡혔다. 힘을 빼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를 가로막는 벽 앞에 수 없이 서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주저하지 말고 물러서서 다시 기본 앞에 서리라 다짐하고 다짐해 본다.

    김임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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