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7일 (수)
전체메뉴

[정연태 四柱 이야기] 재산이 많으면 자식도 많아야 된다

  • 기사입력 : 2011-10-15 01:00:00
  •   


  • “사환 대실이는 술 한 잔을 안먹어도 돈 한 푼 못 모았지만,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 하였어도 나중에 잘되어 벼슬까지 하였다.”

    ‘이춘풍전’에서 방탕한 이춘풍은 성실한 사람이 반드시 잘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면서 자신의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한 후 늘어놓은 변명이다. 하기야 성실하다고 다 잘사는 것은 아니니 그럴 듯한 말이기도 하다.

    ‘이춘풍전’의 이춘풍은 조선후기 등장한 소비형 인간, 유흥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장안 거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춘풍은 부모가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교만하고 허영심 많은 아이로 자랐다. 소설적 설정이지만, 춘풍의 부모는 이러한 망나니 춘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이춘풍이 하는 일은 오로지 돈쓰는 것이니, 주색잡기로 가산을 탕진한 것은 하루아침이었을 것이다.

    그가 가장의 권한을 포기하며 “이후 딴짓을 하면 비부지자(婢夫之子)”라는 각서를 쓰고도 그 처가 모은 돈을 가지고 한양으로 장삿길을 떠나서는 또 기생 추월이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인간의 타락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재산이라는 것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과 자수성가해서 모은 재산이 있다. 자수성가형은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재산을 모으면서 고생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낭비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줬을 때이다.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은 재산의 형성과정이 생략됐으니 그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춘풍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실제 내방객 중에 가끔은 ‘내가 죽고 난 뒤 자식이 과연 그 재산을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부모는 그 자식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재다신약(財多身弱)은 비겁(比劫)이 약(藥)이다’라는 말이 있다. 재물이 강하면 상대적으로 자신의 기운이 약하게 되는데 형제, 자매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에서 재(財)는 매우 중요한 양명지원(養命之源)이다. 재물이 많으면 좋지만 본인이 강건해야 그것을 지킬 수 있는데, 재가 많으면 신약하게 되므로 제대로 간수를 못하고 탈재(奪財)하게 되는 것이 재다신약이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형제다. 논밭이 사방 수십리라 혼자서 감당이 되지 않는데, 형제가 있어 나눠 농사를 지으면 수월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약한 사람이 외아들로 자랐고, 간섭해 줄 부모가 세상에 없으면 귀가 얇아서 남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고 결국은 패가망신한다.

    그래도 이춘풍은 처복이라도 있어서 그 처가 재산을 찾아주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결말이 나지만 원래 재다신약은 처복도 없다. 재산이 없으면서 자식이 많은 것은 군비쟁재(群比爭財)라 하여 다투기만 할 뿐이지만, 물려줄 재산이 많다면 자식은 많은 것이 좋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경우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많은 돈은 아이들에게 좋을 리 없을 것”이라며 “내가 가진 부 가운데 조금씩만 갖고 자기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 좋은 방법인데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어찌 근심이 없겠는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