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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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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박성우

  • 기사입력 : 2011-10-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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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만 성질 있냐?

    나도 대가리부터 밀어 올린다

    -시집 ‘거미’(2002. 창비) 중에서



    ☞ 중장년층에게 이 시를 읽히면 피식, 웃음부터 터뜨립니다. 왜냐구요? 콩나물이 나고 자라는 특성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 어릴 적에는 집집마다 윗목에 콩나물시루가 놓여 있어서 그 콩나물 나고 자라는 걸 자동적으로 보았기 때문이에요. 너무나 잘 아는 걸 너무나 잘 느끼도록 쓰는 것, 이것 역시 좋은 시 작법인가 봅니다.

    밑구멍이 뚫린 시루에 깨끗이 손질한 짚을 깔고 불린 콩을 앉히고 물을 줍니다. 그리고 검은 보자기를 씌워놓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주고 또 주고 들여다보는 재미! 콩나물시루에 물 빠지는 소리를 어린 우리들은 잠결에도 듣곤 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게 자란 박성우 시인도 그걸 보았나 봅니다.

    사실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거의 다 웃음을 터뜨리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이 시가 그렇게 그냥 웃고만 넘길 만한 시는 아닙니다. 짧지만 만만찮다는 말입니다. 이 시는 결코 순응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시이기도 합니다.

    콩나물은 가난한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울분이 많습니다. 그들은 정확히 무엇이 문제이고 원인인지 모르지만 이 시대와 세상에 관하여 격분하길 잘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뭐 시대와 세상, 정치적인 그런 걸로 이 시를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두 사람이 어떤 일로 다투었다고 합시다. 시장판 같은 데서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대드는 광경이라고만 합시다. 세상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감정적인 것이니까요. 사람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감정으로 성질을 내는 인간, 그게 바로 우리의 진짜 모습이고 참 모습이니까요.

    오늘도 성질을 잔뜩 내고 술 퍼마시는 인간,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죽겠다, 속앓이를 하고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하는 인간, 그게 바로 당신이고 나이고 우리 모두이니까요.

    어쨌거나 뭐, 참을 거 없어요. 성질 나면 대가리부터 들이밀어보는 거죠 뭐. 안 그래요? -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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