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경남의 길] 고성천길

경남의 길을 걷다 (39) 고성천길
끝없이 펼쳐진 은빛 가을 ‘내 마음의 쉼터’
때묻지 않은 원시자연 ‘철새들의 쉼터’

  • 기사입력 : 2011-11-10 01:00:00
  •   
  • 고성천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억새들이 늦가을 바람에 휘날리며 탐방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고성천 자연형 하천정비 구간. 물가에 수생식물을 심고 둔치에 산책로를 조성했다.


    하동 갈사만과 함께 경남의 대표적인 갈대 군락지인 고성 간사지. 정확하게는 간석지(干潟地·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개펄)가 맞지만 이곳에서는 고유명사화되어 있다.

    고성 간사지를 만든 고성천을 찾아 그 원시적 매력에 빠져 본다. 이번 탐방길은 한창 단풍이 물이 오른 유명 산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이다.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고성천길은 고성군 대가면 대가저수지에서 출발한다. 대가저수지에서 밤내천을 거쳐 고성천을 따라 거류면 거산리 간사지까지 약 7㎞ 하천제방을 걷는 길이다. 간사지를 돌아 제방 반대쪽인 거류면 가려리를 거쳐 고성읍 송학리까지 4㎞ 정도를 더 걸을 수도 있다. 코스가 길기 때문에 체력 닿는 대로 적당히 끊어서 걷는 것도 방법이다.

    대가저수지는 도내 두 번째로 큰 저수지다. 1932년에 준공, 둘레가 4㎞에 이르며 92㏊의 면적에 4920t의 저수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저수지 물이 생명환경농업을 지향하는 고성평야 구석구석을 혈관처럼 찾아가며 물을 공급한다. 저수지 일대는 겨울이면 천연기념물 제243호인 독수리가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기러기, 청둥오리 등 철새가 찾아와 겨울을 난다. 지난해에는 천연기념물 제203호로 지정된 재두루미 10여 마리가 찾아와 겨울을 나기도 했다.

    고성천은 무량산에서 발원해 양화저수지를 거쳐 남동류하다가 성지산에서 발원해 대가저수지를 거쳐 남류하는 암전천과 합류한다. 고성군은 지난 2005년부터 3년간 고성천 중에서 대평리~죽계리 구간 약 1.8㎞, 강폭 60m에 37억여원을 들여 자연형 하천정비사업을 벌였다. 수질을 개선하고 하천을 주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 곳곳에 어도와 목교, 징검다리, 친수데크를 설치하고 하천변에는 산책로를 조성했다.



    하천정비 작업이 끝난 곳에서 본격적으로 제방을 따라 걸으면 된다. 고성평야가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막바지 수확이 한창이다. 제방은 바이오스포츠로드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하천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양 옆 둔치 곳곳에는 갈대꽃과 억새꽃이 보기 좋게 피었다.

    앞에 마주보이는 산이 거류산,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벽방산이다. 거류산은 해발 570m로 거류면의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벽방산은 650m로 거류면과 통영시 광도면에 걸쳐 있다. 거류산 아래에 송산리, 가려리, 거산리가 앉았다. 들판에는 고성읍 죽계리 죽동, 장계, 평계마을이 들판 한가운데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다.

    고성천은 고성읍 송학리 하수종말처리장 근처에서 율대천, 용산천과 합류하면서 수량을 늘리며 북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고성천은 가물 때는 농사에 도움을 주었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맞은편 가려리 들녘으로 둑이 터져 큰 홍수가 나기도 했다. 지금은 홍수 예방을 위해 하천을 넓히고 제방을 두텁게 보강했다. 그래서 수심은 어른 허벅지만큼이나 될까. 30~40년 전만 해도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둔치의 갈대꽃과 제방의 억새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곱게 물든 단풍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예쁜 꽃도 아니면서, 마른 잎과 함께 가늘게 떨리는 것이 둘은 서로 닮았다. 갈대꽃은 솜과 같은 흰털이 많고 부드럽다. 하얀 억새꽃은 백로같이 정갈하면서 도도하다. 탐방객을 부르는 듯 가을바람에 손을 흔드는 것 같다. 지난여름 그 푸름을 뒤로 하고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천과 갈대 사이에 녹색을 띤 풀들이 계절에 맞서 성깔 있게 버티고 있다.


    대가저수지 아래 암전천에서 백로와 왜가리 등이 물고기 사냥에 한창이다.
    끝없이 펼쳐진 간사지 갈대 군락지.
    추수가 끝난 고성 평야에서 농민이 볏짚을 옮기고 있다.


    어느덧 죽계배수장. 죽계리와 가려리로 연결되는 낮고 조그마한 다리가 있다. 예전에는 징검다리를 건너다니며 농사를 지었다. 큰 비가 내리면 하천 너머 물 담은 논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곳곳에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들이고 찌를 응시하고 있다. 백로떼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먹이를 찾고 있다. 이 길은 어쩌다 경운기 정도나 만날까 산책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거의 없다. 가을을 음미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평일이라 인적도 드물다. 호젓하게 걷다보니 어느덧 두호배수장이다.

    여기서부터 고성천길의 백미, 간사지 갈대군락지를 만난다. 이곳에 오면 하천은 갑자기 넓어지며 거대한 습지로 변했다. 어른 키를 넘는 갈대밭이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길 왼쪽은 해식애가 길게 드러나 이곳이 옛날에는 바다였음을 말해준다. 갈대밭 속의 이름 모를 새는 인기척에 소리를 죽이며 자신을 숨기는가 하면 어떤 놈은 악다구를 하며 경계한다.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이다.

    드디어 간사지 방조제. 간사지는 마암면 삼락리와 거류면 거산리 앞바다(일명 속시개)로 민물과 바닷물이 교류하는 지역이다. 속시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유인해 궤멸시킨 역사적인 현장이다. 왜군이 이순신 장군한테 속았다고 해서 속시개라고 전한다.

    이곳은 1952년 당시 사업비 3억6000만원을 들여 바다를 메워 육지로 만드는 간척사업을 벌였다. 8년이나 걸리는 대공사였다. 100여 정보에 연간 3000여 석을 생산하는 옥토가 생겼으며, 거산리, 두호리, 가려리 등 7개 마을 300여 농가의 터전이 되었다. 간사지교와 수문 사이에 이를 관철시킨 김정실 국회의원 공적비가 서 있다.

    이곳은 철새들의 천국이다. 기러기, 장다리물떼새, 혹부리오리, 비오리, 도요새, 검은머리흰죽지, 중대백로, 쇠백로 등 물새들이 여기를 찾는다.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김덕성 교사는 주남저수지보다 다양한 종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철새들은 갈대밭 사이를 무리 지어 노닐고 있다. 방조제 바깥쪽은 바다의 시작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마동호 공사 예정지다.

    방조제를 걸어 거산마을 못 미쳐 갈대밭을 끼고 돈다. 여기에서 가려리쪽 제방까지 가장자리에는 갈대 군락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가려리쪽 제방에서 간사지를 바라보는 것이 갈대밭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두호마을에서는 갈대밭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방조제쪽은 철새는 잘 보이는데 갈대밭이 너무 멀다. 가려리쪽 제방에서는 일단 위치가 높아 내려다볼 수 있으며 간사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3~4m 높이의 황금빛 갈대가 바람에 일렁인다. 사방은 갈댓잎 부딪치는 소리와 새소리만 들린다. 석양에 비친 간사지는 잔잔한 물결로 갈대를 어루만진다. 들녘에는 누가 불을 놓았는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이 황홀경에 도취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경남의 길을 다니면서 기자는 이곳처럼 마음의 평화를 느껴본 곳이 없다.

    앉을 의자도, 쉴 만한 정자가 없어도 상관없다. 인공미가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상태, 이 장관을 두고두고 보고 싶다. 번잡함이 싫다면,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면 이 길을 강력 추천한다. 간사지로 바로 가려면 국도 14호선을 타고 가다 마암면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글= 이학수기자 leehs@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