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 박서영
- 기사입력 : 2011-11-1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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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 세 자루가 누군가의 얼굴을 파내고 있다
사라지는 시간의 작은 외침이 재깍재깍 들린다
눈썹을 밀고, 눈알을 파내고, 코와 입을 지웠다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지운 얼굴을 또다시 지운다
삽은 또 구덩이를 판 후 물컹한 것들을 파묻기 시작한다
사라지는 시간의 작은 외침이 퍽퍽퍽퍽 들린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저 둥근 얼굴을 누가
자꾸 파내고 있는가
피 한 방울 없이 깨끗하게 해치우는 놀라운 솜씨
사랑을 밀고, 증오를 밀고, 이별과 공포를 지운다
잘 들어 보시라
당신의 얼굴을 삽 세 자루가 돌아가며 파내고 있다
그는 매장과 발굴의 전문가가 틀림없다
☞ 재미있는 시예요. 둥근 시계 모양을 둥근 사람의 얼굴이라고 보았군요. 착상과 발상과 인식의 독특함이 시의 승패에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모범사례!
두말할 것도 없이 ‘삽 세 자루’는 초침 분침 시침이지요. ‘눈썹을 밀고, 눈알을 파내고, 코와 입을 지’운 건 이 ‘삽 세 자루’의 실수이자 노력(솜씨)이었네요. 시인은 그들을 ‘매장과 발굴의 전문가’로 보았어요. 시계는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둥근 얼굴’이지만, 삽 세 자루를 들고 ‘매장과 발굴’을 거듭한 시간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 한 인간의 삶을 완성해 주어요.
결국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간(세월)’이 ‘사랑을 밀고, 증오를 밀고, 이별과 공포를 지운다’는 이야기. 이른바 세월이 약이라는 거지요. 사는 건 고통이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랑도 증오도 이별과 공포도 다 세월(시간)이 가면 낫는다는 이야기. -유홍준(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