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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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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나는 창원사람이다- 최상해(시인)

  • 기사입력 : 2011-11-28 16: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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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 17년 전 늦은 밤 이 생경한 도시에 짐을 풀고 눈을 뜨자 낯선 풍경의 아침, 남편이 출근하면 홀로 남겨진 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로 끝없이 밀려오던 외로움들이 종일 진득하게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만난 창원 올림픽공원, 그 끄트머리에 놓인 철길, 공원 안에 철길이라니! 금방이라도 고향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설 것처럼 가슴이 뛰었던, 서울도 강릉까지도 한 걸음에 달려가고픈 마음으로 엽서를 사들고 선로에 걸터앉았다. 친척도 친구도 심지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공장 굴뚝만 더 높은 이 도시에서 만난 공원은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강릉 같지는 않으나 나의 마음을 치유하기엔 충분했다. 엄마에게 친구에게 뚝뚝 떨어지는 그리움을 엽서에 꼬박꼬박 채워가며 종일 놀았다. 하나도 지겹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푸른 빛 하면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으로 안정과 구호의 의미가 있는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이라고 피력되어 있다. 난시의 시력으로 늘 눈이 피곤해서 자주 찾던 녹색의 빛깔만으로도 눈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언제나 경험하고 있지만, 나는 '안정과 구호'에 더 후한 점수를 보태고 싶다. 구호란 쉽게 말해 재난을 당하여 자립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공적이나 사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을 말한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도시의 일상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느끼든 그렇지 않든 이 '녹색'으로부터 구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곧바로 달려갔던, 그 철길을 둘러싼 공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공원의 변화처럼 창원이라는 도시도 변화를 거듭하여 녹색은 더 진화를 거듭했고, 그 공간에서 다섯 살 때 왔던 아이는 나무처럼 쑥쑥 자라 군대를 제대하고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그렇게 창원이라는 도시는 나의 고향이 되어갔다. 처음 캄캄한 어둠속에 첫발을 내려놓았던 그 때의 두려움은 푸근함으로 변해 이젠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만약 그 외롭고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시간 앞에 이런 공원을 둘러싼 환경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점점 우울 속으로 빠져갔을 것이다. 

    똑딱 불을 끄면 깜깜한 거실처럼 온통 암흑이었던 정전, 어느 순간 죽음 같은 승강기에 갇혀버리는 어둡고 무서운 시간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종교를 통하든 그렇지 않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은 매 한가지 일 것이다. 나는 왜 이 철길이 공원 한 쪽에 누워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공원에서 철길을 처음 만났을 때 금방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처럼 고향을 등지고 공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노동자들이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고 자란 고향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녹색'을 외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녹색, 이 녹색의 공원이 없었다면 나는 치유 받지 못했을 것이다.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보다는 '안정과 구호'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그런 이유이다.

    창원의 공원이 우리나라 도심지에 있는 공원 중 최고라고들 한다. 인위적인 공원이기에 그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다. 기계공업의 요람, 사람이 사는 도시라기보다는 '공단'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다가오는 창원에 와 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제는 딱딱하고 삭막한 이미지 보다는 오히려 어디를 가나 푸른 공원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 창원, 이 창원에서 나처럼 고향을 떠나온 많은 실향인 들이 고향을 만나듯 구원을 얻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잊고 지낸 시간을 밟으며 올림픽공원 한 귀퉁이에 고요히 누워있는 철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처음 이 공원을 만났을 때처럼 멀리 강릉에 있는 친구에게 지난날처럼 엽서라도 한 장 써야겠다.

    최상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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