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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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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발을 보다- 고형렬

  • 기사입력 : 2011-12-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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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니들의 가느다란 발이 논둑을 넘어 간다

    넘어 가면서 마른

    풀 하나 건들지 않는다



    나는 그 발목들만 보다가 그 상부가 문득 궁금했다 과연

    나는

    그 가느다란 기다란 고니의 발 위쪽을 상상할 수 있을까



    얼마나 기품 있는 모습이 그 위에 있다는 것을



    고니 한 식구들이 눈발을 걸어가다가 문득 멈추어 섰다

    고니들의 길고 가느다란 발은 정말 까맣고

    윤기나는 나뭇가지 같다



    (그들의 다리가 들어 올려질 때는 작은 발가락들이 일제히 오무려졌다

    다시 내디딜 땐 그 세 발가락이 활짝 펴졌다)

    아 아무것도 들어 올리지 않는!



    반짝이는 그 사이로 눈발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내게는 그들의 집이 저 눈 내리는 하늘 속인 것 같았다

    끝없이 저 눈들이 붐비는 하늘 속



    고니들은 눈송이도 건들지 않는다



    ☞ 세심한 관찰력이네요. ‘그들의 다리가 들어 올려질 때는 작은 발가락들이 일제히 오무려졌다/다시 내디딜 땐 그 세 발가락이 활짝 펴’지는 걸 묘사한 걸 보세요. 그렇군요. ‘아무것도 들어올리지 않’으려면 그렇게 발가락들을 일제히 오무려야 하는 군요. 그래야 ‘마른/풀 하나 건들지 않’고 生의 논둑을 넘어갈 수가 있군요.

    저 눈 내리는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고니여. 눈송이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고니여. 그러나 인간은 무겁고, 인간은 괴롭고,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단다.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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