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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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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이미화(시인)

  • 기사입력 : 2011-12-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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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은 시간에 대해 조급해진다. 365일의 많은 일력들을 세상 속으로 나누어 주고 남아 있는 서른한 개의 숫자들이 차례차례 사그라드는 모습, 자신을 살라 한 해를 마무리 짓는 12월이다. 저무는 송년, 차가운 길목에서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생각해 보자. 아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은 것 같다.

    며칠 전 신문에서 ‘1억1000만원 수표와 손편지’라는 구세군 모금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구세군 모금 역사 83년 만에 나온 큰 성금이라는 기사도 함께였다. 거동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께 써달라는 손편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섬뜩한 기사들로 도배되는 각박한 세상에 화롯가에 앉은 듯 훈훈한 이야기여서 내가 받은 것 이상의 큰 감동을 받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수없이 되뇌어 본다.

    그리고 60대 초반의 노신사의 나눔에 대해 많은 국민들 또한 자신이 직접 베품을 받은 것처럼 감사하며 댓글들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ART캣츠라고 아이디를 쓰는 초등학생은 “뉴스를 보고 마음이 설레고,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합니다란 말이 떠올랐습니다”라며 그 감동을 오래오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대학생, 어른이 되어서까지 기억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고 쓰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눔인가.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노신사의 베풂은 우리나라의 초석들에게까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멱살잡이 장면을 끊임없이 내보내고,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연일 불안에 떨고, FTA반대 집회로 국민과 경찰은 다시 대치되고, 경제는 끝도 없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어 모두들 이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다. 때맞추어 찾아온 겨울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걱정까지 덧붙이게 한다.

    현실이 빈 가지로 추위와 맞서는 나무와 같은 즈음, 그분의 숨은 선행은 꺼져가는 인정에 다시 잉걸불을 당겨준 것이리라. 그리고 2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하고도 사회에서 받은 걸 되돌려 줄 뿐, 당연한 일이라며 마음씨 좋게 웃는 안철수 원장, 오래전부터 기부천사로 알려진 가수 김장훈, 또 부부가 함께 기부에 참여하는 탤런트들, 이 외에도 많은 익명의 기부천사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소외된 이웃, 어려운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어 오고 있다.

    또한, 나눔이란 꼭 물질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어도 좋겠다. 혼자 되신 시아버지를 모시는 선배는 주말이면 마을회관에 가서 사물을 가르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실버타운을 찾아 작은 공연을 한다. 두루마기 남자 복장을 하고 학춤을 추면 할머니들이 나와 덩실덩실 함께 춤을 추며 그렇게 행복해 하신다고 한다. 선배는 오래도록 이 공연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들녘에 흐드러지게 핀 국화처럼 해맑게 웃었다.

    뿌리 내릴 터전이 필요한 화초의 풀씨에게 성큼 자신의 몸을 내어준 대지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대지가 되어줄 수 있어야겠다. 비록 한 뼘의 대지더라도 잡풀은 뿌리 내리고 그 꽃은 산야에 무성히 피어 다음 계절을 이어갈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노신사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선배 같은 사람들이, 그리고 이웃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ART캣츠 같은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 삶은 빛으로 환해지고 참으로 살맛 나는 향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나눔에 대한 책을 쓴 시인 레이프 크리스티안손은 “우리에겐 보고 들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입이 있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리가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밀 수 있는 손도 있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을 꼭 안을 수 있는 팔이 있지요”라고 했다. 정말 우리가 나눔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뭘 망설일 것인가.

    저기, 사랑의 김장김치 나누기 행사가 한창이다. 겨울도 살 만한 계절이다.

    이미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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