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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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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노년을 바라보며- 강애란(시인)

  • 기사입력 : 2011-12-3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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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몇 살일까. 자고 나면 현대과학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이에 따라 점점 길어지는 평균수명에 대해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20여 년 전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는 특약보장기간이 70세까지였다. 그러나 이미 80세를 넘었다. 이젠 100세 고령화 시대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검버섯이나 주름살을 성형술로 감추려 해도 젊은이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나이에 나도 서 있다.

    내가 자주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 건망증이 심하다고 말하면 일단 치매 예방 검사부터 받아보라고 권하는 이가 있다. 그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멀리 있다고만 생각했던 노인 세대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도 점점 퇴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앞으로 30년 이상 살지도 모른다며 자격증을 따보겠다는 이들도 있다. 노인심리상담사, 노후생활설계사, 치매예방관리사, 노인여가건강관리사 등 예전에 흔치 않던 이색 자격증들이다. 자격증의 종류는 이 외에도 많이 세분화되어 있다. 해마다 늘어나는 노인들을 위해 젊은 사람들이 그것을 취득하고 있지만 노후준비를 한다고 예비 노인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욕심 부리지 말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 노년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부부동반 연말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두 부인이 그 치료법과 병원에 대해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내 딸아이의 출산날짜를 물었고 산후 얼마 동안 도우미를 쓸 생각이냐고 관심을 보였다. 병원비도 무슨 옵션이 그렇게 많으냐, 산후조리원 비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둥 요즘 산부인과와 출산 후 몸조리 과정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말이 나온 김에 조리원 비용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지역마다 다르긴 해도 2주일에 180만원부터 700만원 이상 천만 단위까지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한 지붕 아래 자녀들과 아침저녁 밥상 앞에 모이는 가족들이 얼마나 될까. 함께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생활의 지혜도 자격증이 있어야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산모 마사지부터 미역국 끓이고 아기 목욕시키는 일까지도 남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부인이 산후조리도우미 자격증 따고 두 번 도우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무릎관절 수술을 받았다고. 도우미 일하고 받은 비용으로 병원비 냈다는 소리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자녀들의 혼인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늦게 낳으려고 하는 추세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부모들도 예전보다 나이가 많아지고 있다. 이럴 때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자신을 위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봉사활동이나 종교생활도 좋겠다. 늦게 시작하는 글쓰기나 붓글씨라면 큰 욕심 없이 다가가면 더 좋을 것 같다. 만약 시 쓰기나 붓글씨를 시작한다면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쓰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붓글씨에 관한 말씀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시내 길모퉁이에서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어요. 바람막이 포장을 쳐놓고, 포장 앞과 양옆에 ‘군고구마’라고 써붙여 놓고 말이지. 서툰 글씨였어요. 꼭 초등학교 일이학년이 크레파스로, 혹은 나무 작대기를 꺾어 쓴 글씨 같아 보였는데, 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먼 곳에서도 뚜렷하게 잘 보였어요. 아, 얼마나 훌륭한가! 이 글씨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반갑고 따뜻한 것인가!’ 부끄럽다. 내 글씨 또한 저 ‘군고구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림도 없는 일 아닌가?”

    강애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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