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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포로수용소에 있는 혜원·규원에게- 오무선(4·19민주혁명 희생자유족회 경남지부장)

  • 기사입력 : 2012-01-2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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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원아! 규원아! 잘 있니. 요 며칠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서 저절로 어깨가 움츠려지는구나. 그렇지만 혹독하리만치 추운 곳에 있을 너희들을 생각하니 여기 추위는 오히려 호사로 느껴지는구나. 미안하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1985년 8살과 10살 무렵 영문도 모를 어린 나이에 북한으로, 그리고 악명 높기로 소문난 정치범수용소라는 곳으로 끌려간 너희들. 강산이 벌써 두 번이나 바뀌어 너희들도 이제는 34살, 36살이 되었겠구나. 음악에 재능이 있다던 너희들. 북한이라는 지옥이 아니었다면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로,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지냈을 너희들. 미안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너희들에게 우리는 너무도 무심했다.

    지금에 와서 그 어떤 보상을 해줘도 너희들의 분노가 없어지겠냐마는 그래도 지난해부터는 어머니와 너희들을 구출하기 위한 서명운동이 국내외로 확산되고 있어 스스로 ‘이제는 잘될 거야’라고 자위해 본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너희들의 아버지 오길남 박사의 눈물겨운 구명 노력과 어머니 신숙자 여사의 고향인 통영시민들이 호응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지. 너희 가족들의 비극을 안 후 대다수 국민들은 분단국가의 비참함에 다 같이 슬퍼했고, 그렇게 만든 북한 정권과 네 아버지를 입북토록 한 윤이상 부부에 대해 분노했단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에 무관심했던 점을 자책했단다.

    하지만 여전히 여기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단다. 북한을 찬양하고 죽어서도 북한에서 ‘애국자’로 칭송받고 있는 윤이상이 대한민국에서도 ‘애국자’로 둔갑되고 심지어 어린이들이 보는 위인전에도 끼어 있다는구나. 고향인 통영에는 그를 기념하는 테마파크도 있고 그의 이름을 딴 음악제도 열린다. 그들의 악행에 우리 국민들이 눈멀고 귀 멀었음에 사과한다.

    독일에 살 때 너희들도 알았을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는 독일과 한국, 그리고 북한의 별장을 오가며 호화생활을 한다는구나. 더구나 너희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을 고통 속에 내몬 김정일이 죽었을 때 독일 국적을 이용해 옆집 문상 가듯이 북한을 방문했다는구나.

    너희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수자 모녀는 북한에 갔으면서도 너희를 구출하려는 어떤 노력도 않고 돌아왔단다. 그리고 지금은 너희를 구출하기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됐던 이곳 통영의 별장에서 요양하고 있고.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심지어 너희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까지 한단다.

    미안하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무심했던 우리들, 북한 정권에서 잘 보이려고 애써 너희를 외면하고 있는 정치인들, 수시로 인권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너희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자칭 인권 운동가들. 이런 땅에 살고 있는 나도 무력감을 느낀단다.

    혜원아! 규원아! 그래도 우리 희망을 가지자.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까 반드시 자유 대한민국으로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꼭 쥐고 가자. 우리도 너희가 우리 품에 올 때까지 절대로 너희를 잊지 않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니 수용소 생활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제발 살아만 있어 다오.

    오무선(4·19민주혁명 희생자유족회 경남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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