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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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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대보름의 아픈 기억- 배회숙(창원시 성산구 성주동)

  • 기사입력 : 2012-02-0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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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이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나의 머릿속에는 악몽같은 일이 떠올라 마음이 울적해진다.

    2009년 정월 대보름날 창녕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에 남편과 함께 갔다.

    그날의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이 좀 부는 것 외엔 행사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하면서 쉬엄쉬엄 오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화왕산에 등산은 여러 번 온 경험이 있지만 억새태우기 행사에 참석하기는 처음이라 불로 인한 위험성은 전혀 모른 상태였다. 억새 태우는 행사는 해가 진 뒤에 불을 지피는데, 억새에 불을 지피기 위한 사전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잔잔한 바람이 갑자기 세차게 불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그때 억새에 불을 지핀다는 방송과 동시에 산 중턱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행사요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억새에 불을 지폈다. 불은 기다렸다는 듯 마른 억새를 기름으로 삼고 바람을 등에 업고 수십미터의 불기둥과 불덩어리를 만들면서 공처럼 굴러서 화왕산을 삼킬 기세로 정상을 향해 타올랐다. 순간 무서운 공포감을 느끼면서 무작정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으로 도망을 갔다.

    도망가는 중에 뒤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잡고 넘어지면서 손을 놓지 않는 바람에 살기 위해 억지로 떼어 놓고는 앞만 보고 달렸다. 불꽃은 바람과 함께 번개처럼 화왕산을 휘감으면서 나를 잡기 위해 날아오는 것 같아 보였다. 엎어지면 일어나고 달리기를 반복하다 다리가 굳어져 힘이 빠지면서 언덕 아래로 넘어져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순간 “나의 인생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과 짧은 시간인데도 머릿속에는 아들과 남편, 부모, 형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살기 위해 그렇게 힘들고 험난한 삶을 살아왔나. 주변 지인들에게 좀 더 잘 하고 살걸 하는 미련과 후회가 교차하는 순간 난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때마침 남자 한 분이 지나가는 순간 난 모든 힘을 다해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 남자분은 그 순간 뒤돌아 불꽃이 날아오는 거리와 속도를 확인한 후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모든 힘을 다해 그분의 손을 잡고 일어나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불꽃이 날아오는 방향에서 벗어난 후 정신을 차려 화왕산을 뒤돌아보니 불기둥은 산 정상 전체를 지나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서 달리고 있었다. 불기둥이 지난 그곳에는 잔불과 연기, 아우성, 비명, 호루라기 소리가 난무하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서야 남편 생각이 나서 휴대폰으로 연락을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을 찾기 위해 처음 자리 잡았던 곳으로 올라가니 어둠이 깔려 사람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화상을 입은 사람들의 아우성과 가족을 찾는 고함소리와 화마가 삼켜버린 시체를 보는 순간 난 다시 공포감에 휩싸였다. 주변에서 한참을 돌고 있을 때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엉덩이쪽 옷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어 창원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때서야 난 나를 도와준 그분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삶을 더 소중하고 따스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고 하지만 정월 대보름이면 그분을 생각하게 된다.

    나이는 대략 40대에 체격과 키는 보통인 것 같다. 아마 그분도 나를 도와준 기억은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제나 그분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배회숙(창원시 성산구 성주동)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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