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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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95) ‘통섭(統攝)’에서 찾는 공감 글쓰기(하)

학생들의 논술엔 간접지식을 활용하라

  • 기사입력 : 2012-02-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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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섭’으로 주목받는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EBS 기획특강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 /그래픽=김문식/


    지난 시간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통섭(統攝)으로 유명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를 예로 들어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왜 최 교수의 글이 논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설명할까 합니다. 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 몇 편을 통해, 학생들이 국어시간에 배운 ‘서론-본론-결론’이나 ’기-서-결’ 또는 ‘기-승-전-결’이라는 얼개에 어떤 내용을 넣으면 좋을지 알아봅시다.

    먼저 최재천 교수가 쓴 <전당포의 추억>이란 칼럼을 보자. 지면사정상 간략하게 요약해서 싣는다.



    【이 땅의 50~60대라면 누구나 전당포의 추억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시계가 손목에 채워져 있던 시간보다 전당포에 잡혀 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그런 추억 말이다.(…)

    하지만 전당업은 원래 물품이 아니라 사람을 담보로 하는 인질 또는 인신매매로 시작된 사금융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자금 대출제도도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미래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인질 전당업’이다.(…)

    아무리 저금리라지만 취업하자마자 갚기 시작해야 하는 삶이 왠지 전당포에 잡혀 있는 시계나 노트북 같아 서글프다.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 나라가 기댈 데는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 나는 우리의 목표가 학자금의 대출이 아니라 지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복지의 종결은 교육이기 때문이다.】


    눈길 끄는 글감으로 칼럼의 얼개 구성

    그가 과연 동물학을 전공한 사람인가 의문을 가질 만큼 글의 구성이 흥미롭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결론 부분에 나온다. 학자금 대출보다 교육복지를 지원하라는 것이다. 이 글은 ‘전당포’를 글감으로 시작한다. 글감이 눈길을 끌면 읽히는 칼럼이 된다.

    서론엔 전당포의 추억, 본론에는 전당포의 유래와 본질, 결론엔 학자금 대출제도에 저당잡힌 대학생의 현실을 다루며 대안을 제시했다. 전당포와 학자금을 연관시켜 칼럼의 얼개를 짜는 글쓰기 기법인 것이다.

    이번엔 <나가수와 진화>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을 보자.



    【좀처럼 TV를 보지 않는 내가 요즘 퍽 열심히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나는 ‘나가수’에서 진화의 진면목을 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나가수’에서는 일단 질러대야 한다.(…)

    그렇다. 문제는 선택이다. ‘나가수’의 가수들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고음을 내고 더 큰 소리를 지르기 위해 피를 토하고 있다.(…) 그래야 선택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적나라한 참모습이다. 또한 ‘나가수’에서는 1등이 선택되는 게 아니라 꼴등이 도태당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최고가 아니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실제로는 그저 남보다 뒤지지만 않으면 살아남는다. ‘나가수’의 가수들이 그 치열한 순간에도 서로에게 관대할 수 있는 것은 설마 자기가 꼴등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컷오프(cutoff)만 면하면 내일도 그린에 나갈 수 있다.】


    ‘나가수’ 경쟁구도를 ‘진화’에 접목하기

    이 칼럼은 필자가 다윈의 진화론을 연구하는 동물학자임을 짐작할 수 있는 글이다. ‘나가수 열풍’과 ‘진화’를 엮어 경쟁사회의 한 단면을 얘기하고 있다.

    글에 나오는 용어도 ‘자연선택’ ‘도태’ 등 우리가 학교에서 다 배운 것들이다. 동물학 교수가 글을 전문용어로만 나열한다면, 칼럼이 아닌 논문이 되기 십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인기 TV프로그램 ‘나가수’의 구도를 진화의 참모습으로 바라보는 글쓰기 시각이 돋보인다.

    공감이란 이슈를 찾는 데 글감을 논리있게 접목함으로써 다윈의 진면목을 알리고 있지 않은가.

    이와 비슷한 칼럼 한 편만 더 살펴보자. 대학 논술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소통>을 주제로 쓴 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국가에서 소통이 문제라니 이 무슨 기막힌 모순인가?(…) 내가 하는 동물행동학이란 따지고 보면 결국 동물들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귀뚜라미는 우리 못지않게 청각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실제로 관찰해보니 어떤 녀석은 하룻밤에 무려 11시간을 운다. 귀뚜라미는 윗날개를 서로 비벼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 수컷들은 밤마다 왜 그리도 끔찍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일까? 암컷 귀뚜라미들이 쉽사리 그들이 부르는 세레나데에 넘어와 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소통을 원하는 자가 소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방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관계이다. 툭하면 소통이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우리 정부의 푸념은 소통의 근본을 모르는 처사이다. 국민이 이해할 때까지 수천 번이라도 설명과 설득을 반복해야 한다. 11시간이나 날개를 비벼대는 귀뚜라미 수컷처럼.】


    ‘귀뚜라미’ 예로 들어 ‘소통’을 말하다

    이런 유의 칼럼은 정보도 얻고 사회 현안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수십년간 쌓아온 동물학자의 전공지식을 한껏 살려 우리 정부의 소통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대학 논술시험에서 요구하는 창의적인 대안(주장)에 해당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귀뚜라미의 노력처럼 국민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과 설득을 반복하라고 주장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최 교수처럼 학자가 아닌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이런 식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책이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 방송에 나오는 다큐 등 교양물도 포함된다.

    간접지식을 글쓰기에 활용하는 것, 이것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통섭 글쓰기요, 창의적인 논술인 것이다. 왜 글쓰기가 중요한지를 얘기한 최 교수의 말을 소개하면서 오늘 논술탐험 시간을 마친다.

    편집부장 sim@knnews.co.kr


    “이 세상 모든 일의 종국에는 반드시 글쓰기가 있더라고요. 저처럼 대학교수를 하면 논문을 써야 합니다. 누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문을 썼느냐에 따라서 최고의 저널에 실리느냐 못 실리느냐가 결판납니다. 모든 게 글쓰기입니다, 나는 책은 안 읽는데 글은 잘 쓴다? 그게 가능합니까? 역시 많이 읽은 사람이 잘 씁니다. 결국은 흉내 내는 거니까요, 그게 제 안에서 녹았다가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풍부한 책 읽기가 좋은 글쓰기의 전제조건입니다.”


    *참고 자료: △EBS 기획특강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 △다윈 지능,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최재천) △조선일보 칼럼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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