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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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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선생님의 사과- 김미숙(시인)

  • 기사입력 : 2012-02-2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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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고향은 사천시에서도 바닷길 따라 한참을 들어간 서포면 비토섬이다. 하마터면 간을 내줄 뻔한 토끼와 거북이의 전설이 어린 곳이다. 섬엔 초등학교밖에 없어서 중학교 때부터는 삼천포에 나와서 살았으니 고향을 떠난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엄마가 살고 계시기에 나는 아직도 한 달에 한두 번 고향을 찾는다. 옛날 집 조금 못미쳐 추억의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앞쪽으로 작은 만을 이루며 들어와 있는 바다를 볼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을 떠올린다. 그때 체육시간에는 수영이 권장종목으로 들어 있었다. 그러나 변변한 수영장이 있을 리가 없는 섬마을 초등학교에서 체육선생님이 생각한 것이 손바닥만 한 학교 앞 바다에서 아이들과 수영하는 것이다.

    아마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였겠지만, 선생님은 시골에서는 보기도 귀한 사과를 가져와서 조각배에 싣고 그것을 바다에 하나씩 던졌다. 그러면 아이들은 속칭 ‘부르마 팬티’라는 체육용 반바지를 입고 뛰어들어 줍는 것이다. 물론 요즘의 ‘부르마 팬티’는 배구선수들이 입는 것과 같은 바짝 달라붙는 팬츠지만 그때는 아래위로 고무줄을 조여 맨 몸뻬(もんべ)의 반바지 형이라고 보면 된다.

    배부를 때보다 배고플 때가 훨씬 많은 궁핍한 섬마을. 설 명절 아니면 구경하기도 힘든 사과를 줍기 위해 우리는 너도 나도 있는 힘을 다해 헤엄을 쳤다. 하나를 잡으면 당연히 하나를 더 잡으려 경쟁했다. 그러나 여기서 교훈이 따른다. 하나를 잡으면 계속 헤엄칠 수 있지만 두 개를 잡으면 가라앉는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물속의 생존을 위한 한 손은 남겨야 하는 것이다.

    경험으로 그걸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하나를 잡았는데도 남은 한 손으로 기어코 하나를 더 잡으려다가 결국 짠물을 들이켠 뒤에야 놓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악착같이 두 개를 다 가지고 나오려다가 바닷물만 실컷 먹고 지쳐서 두 개 다 놓친 뒤 우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 숫자만큼만 사과를 가지고 오셨다. 욕심을 부리는 아이가 있다는 것 감안하면 사과가 모자라야겠지만 낮은 바다 위에는 항상 사과가 몇 개씩 남아 떠다녔다. 욕심으로 결국은 하나도 갖지 못한 아이가 그만큼이나 있었다는 결론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넘쳐 남의 것을 넘보게 되면 자신마저 다친다는 교훈을 우리는 배운 것이다.

    성경에서 아담이 딴 선악과를 두고 사과니 복숭아니 말들이 많지만 어쨌든 아담의 사과는 욕망의 위험을 경고하는 금단의 과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바다에 던진 사과도 욕망의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몸으로 체득하는 금기의 교훈이 있었다. 남의 것을 넘보면 자신을 망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 욕망의 끝없는 유혹에 휘말려 자칫 몸을 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가진 권력 위에 더 큰 권력을 좇다가 신문을 장식하는 정치인들, 가진 재물 위에 더 가지려다가 세간의 원성을 듣는 재벌들, 크게 한탕하려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 그런 상황과 나 자신을 반성하며 쓴 필자의 졸시 한 편을 소개한다.

    “한 알도 벅찼다/섬마을 초등학교 체육 선생님/작은 배에 사과 싣고 하나씩 던지면/고사리손으로 헤엄치며 사과를 줍는다//운 좋아 두 개를 잡으면/가라앉아 짠물 먹기 십상/생명의 한 손은 남겨야 산다는 걸/가르칠 작정이었을까//지금도 인생 짠맛에 눈 아릴 때면/선생님의 사과 한 알을 생각한다/못 잡으면 굶어죽고/두 개 잡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는 것을//산다는 것은 그 중간 어디쯤에서/끊임없이 균형 잡는 일이라는 것을” <사과 한 알>(전문)

    봄이다. 피어난 생명들은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하는 것을 안다. 풍성한 봄을 즐기되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보폭을 조절하며 겨울이 반드시 온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욕심내어 급하게 걸으면 그만큼 빨리 겨울이 온다는 것을.

    김미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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