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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고성 하일면 학동마을

돌담길, 그저 내딛는 걸음걸음이 추억이어라

  • 기사입력 : 2012-03-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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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담장길.
     

    최영덕씨 고가의 모과나무.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 단아한 돌담길의 옛 정취와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켜켜이 쌓인 돌담이 고향집에 들른 듯 포근함으로 다가서고 분주함에 익숙한 우리의 일상과는 사뭇 다른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학동마을을 찾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돌담길’로 유명한 마을이다.

    고성군 하일면 학림리에 있는 학동마을은 단아한 돌담길의 옛 정취와 고즈넉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돌담장이 옛 모습 그대로 가장 잘 보존된 곳 중의 한 곳인 이 마을은 2006년 6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된 전주 최씨 안렴사공파의 집성촌으로 1900년대에는 150여 가구가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50여 가구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과 공룡박물관이 있는 상족암군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마을은 ‘학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 학동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 어귀에 학동(鶴洞)이라 새겨진 큰 바위가 찾는 이를 먼저 맞는다.

    마을 길을 따라 100여m 되는 돌담장은 돌과 황토가 조화를 이루면서 돌담만이 가진 독특한 곡선미와 자연미가 빼어나다. 처음 마을을 개척하면서 인근 수태산 돌과 흙으로 층 쌓기를 했는데 그 모양새가 예술품이다.

    담 위에 개석이라는 널찍한 돌을 얹어 담을 보호하고 담장 아랫부분 30~40㎝는 비가 올 때 돌과 돌 사이의 황토가 씻겨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로만 쌓았다.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두께 2~5㎝의 넓적한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담장에 300년의 역사와 배어 있다.



    이곳을 찾은 한 관광객은 “서울 덕수궁 돌담길보다 정감 있고 단아해서 좋다”고 말한다.

    이 마을에서 출토되는 황토에는 골재 성분이 많이 포함돼 있어 굳으면 단단해지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담에 쓰인 돌은 변성암 계통의 점판암이다.

    이 마을의 오래된 담장과 고가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숲과 잘 어우러져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참봉댁으로 불리는 최영덕씨 고가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전통 목조 건물인 사랑채를 포함한 모든 건물은 일자형 평면 구조로 우진각 지붕의 안채 외에는 모두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랑채는 회랑식 건물이어서 문을 모두 열면 사방이 트여 사철 햇볕과 바람이 잘 들어오는 구조다.

    “뭐 볼 게 있다고….” 집을 구경시켜달라는 말에 서울 등 객지 생활을 하다 50년 만에 귀향했다는 최씨의 처음 답은 이랬다.

    그러나 사랑채에만 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건물 정면의 梅史(매사), 안쪽의 鶴林軒(학림헌) 현판에서 역사를 볼 수 있다. 관청에만 붙이던 ‘軒’자가 들어 있는 연유를 물었더니 “임진왜란 때 이 건물을 관청인 동헌으로 사용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기둥이 옛날 관청 건물에만 사용했던 둥근 나무 기둥이다. 현판 학림헌을 쓴 이는 구한말 외탁지부 대신을 지내고 추사 이후 명필로 유명한 김성근 선생이라고 한다.

    사랑채 마루 천장의 우물정(井)자 모양의 장식, 창문의 문살도 눈길을 끈다. 사랑채 서쪽 한 방에는 임금이 최씨 선조들에게 내린 교지들이 여럿 붙어 있다. 진본은 도난 우려 때문에 박물관에 기증하고 복사본이 남아 있다. 조선 사대부 집안의 위엄이 느껴진다.

    집안 여기저기 설명을 듣고 나서야 고개가 끄떡여진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거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유홍준 교수의 말을 실감한다.

    지금은 이 사랑채를 민박용으로 대여해 주고 있다. 편의를 위해 방 뒤쪽 공간은 화장실로 개조했다. 가족과 꼭 한 번 묵어 보고 싶다.

    고택 안채 우측 대나무 밭 아래에는 우물이 있다. 깊이 7m의 이 우물은 화강암으로 돼 있으며 뚜껑에 구멍 3개가 나 있다. “음양의 대표격인 天, 地, 그리고 중간의 사람 人, 즉 三才의 의미가 있다”는 최씨의 설명이다.

    사랑채 앞의 모과나무는 나뭇가지 몇 군데가 붙어 있는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인공적으로 만든 작품이다. “민박 오는 젊은이들이 이 나무를 붙잡으면 사랑이 맺어진다고 사진 촬영 명소가 됐다”고 귀띔해 준다.

    이 밖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08호로 지정된 육영재는 문중의 후세를 교육하기 위해 1723년에 마을 옆 서쪽 계곡에 세운 서당으로 한국전쟁 당시 이 부근 하일초등학교가 불탔을 때는 전교생이 4년간이나 공부한 곳이다.

    학동마을에서 나와 상족암 방향으로 500m쯤 가면 송천 농어촌체험센터가 있다. 참다래 수확철에는 농촌체험 등을 할 수 있다. 50여 명이 묵을 수 있고 강당이 있어 MT 겸 체험활동에 제격이다.

    글·사진= 강태구기자 tkka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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