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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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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3월은 풋풋하지만 아프다- 정이경(시인)

  • 기사입력 : 2012-03-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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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이다. 이 3월 속에는 곳곳에 ‘새로움’이 가득하다. 새 학년이 된 학생이 있는 학교가 그렇고, 추운 겨울을 묵묵히 견뎌 낸 이즈음의 산과 들이 그러하다.

    해마다 새로운 기분이 되는 3월이 나는 좋다. 움츠려 있던 것들이 살아 움직이는 봄이기도 하지만, 집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마냥 사랑스럽다. 아직은 자기 체격보다 좀은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둘 셋씩 짝을 지어 가는 아이들이, 희망의 새싹인 까닭이다.

    요즘은 시대가 변해 도시에서는 부모들이 학교 앞까지 자가용으로 등교를 시키고, 또 공부가 끝나는 시각이면, 각종 학원차량이 집으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입학식이 뭔지도 모른 채 할머니나 돌보미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를 오가거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김없이 만나는 여러 아이들이 있다.

    길게는 5년씩, 짧게는 1년씩 만나고 있는데, 경미(가명)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농사를 짓는 아빠랑 함께 살고 있다. 꽤나 예쁜 얼굴에 성격도 밝고 명랑한 편이다.

    어쩌다 유치원 이야길 물어보면, 선생님과 공부하는 건 재미있지만,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겼다며 놀릴 때는 유치원에 안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잠시 슬픈 표정이 되기도 하던 아이다.

    경미는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엄마를 둔 이유로, 다문화가정 한글 교사인 나와는 1년 가까이 만나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방학 동안의 안부도 궁금하고 또 학교에 입학할 준비는 되었나 싶어 경미네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입학식도 잘 치르라고 했더니 대뜸 “입학식이 뭐예요?”라며 되묻는 게 아닌가. 순간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고 언니나 오빠들처럼 진짜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입학식도 할 거’란 이야기를 분명히 했던 터였고, 40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 학부모가 되는 경미 아빠나 할머니에게도, 미리 입학 전후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뒀지만, 다시금 마음이 아려올 수밖에.

    올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명재(가명)는 이제 겨우 6살이다.

    우리글을 읽을 순 있으나 정확한 뜻도 잘 모르고, 발음 또한 우리들과는 사뭇 다른 베트남에서 온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공장에 다니는 엄마가 이른 출근을 하고 나면 명재는 혼자 덩그마니 집에 남아 어린이집 차를 기다렸다가 어린이집에 간다.

    또 종일반이 끝난 5시30분부터 엄마가 돌아오는 7시50분까지는 제대로 된 학용품이나 장난감도 없이 오직 TV와 친구하면서 지내야 한다. 게다가 엄마가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동네의 약국 할아버지 댁에서 무작정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 우리들의 이웃집 아이일 수 있는 명재가 있다.

    우리 주위에는 비단 이런 경미나 명재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정으로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 자꾸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경미나, 아빠가 돌아가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엄마와 사는 명재처럼, 겨우 초등학교 1학년생이거나 고작 유치원생일 뿐인 이 땅의 많은 경미와 명재들을, 아니 그 가족들을 과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 따스한 봄날에 조용히 묻고 싶다.

    우리와 함께 이웃해 살 만한 희망을 그들에게 안겨줬는지 감히 되묻는다.

    이렇듯 3월은 해마다 풋풋하지만, 나는 아프기도 한 것이다.

    정이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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