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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함안박물관

나 여기 있었노라, 아라가야의 찬란한 외침

  • 기사입력 : 2012-04-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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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말이산 고분군. 37기의 대형 고분이 능선을 타고 이어져 있다./성민건기자/
     


    책 속에 갇힌 역사는 신화에 불과하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그 신화가 책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면 나의 이야기가 된다. 나를 키운 땅, 내 몸을 만들어 피를 돌게 한 위대한 힘, 그것이 바로 역사다.

    1500여 년 전 낙동강과 남강 일대를 지배했던 제국 아라국(아라가야)의 위대한 왕들이 잠든 곳.

    함안군 가야읍 도항·말산리 일원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그런 땅이다.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채 외세에 맞섰던 터. 그 땅의 정기를 받아 새 생명이 태어나고 스러졌는지 모른다.

    고분군과 연결된 함안박물관은 무덤 속 신화를 현재화해 놓은 공간이다. 어른들은 상상을 통해 15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고 어린이들은 신나는 체험으로 역사를 배운다.

    고분군에 이르는 길은 함안군청에서 뒷길로 올라가는 방향을 많이 선택한다. 그러나 함안박물관을 빼면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여행에 그칠 수 있다.

    박물관은 입구에서부터 눈을 잡는다. 13호분에서 발굴된 새가 달린 미늘쇠(有刺利器)를 형상화한 ‘함안박물관’ 안내판이 예사롭지 않다. 옛것과 오늘의 문화가 조화된 아름다움의 극치다.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길은 황홀하다. 지금은 아파트가 선 도항리 마갑총에서 발굴된 ‘불꽃무늬가 있는 굽다리접시’를 형상화했다. 이곳을 지나면 몸과 마음이 1500년 전으로 이동한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고분군은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484 등 562필지에 있는 대형 고분군 37기와 발굴되지 않은 소규모 고분 등 1000여 기를 일컫는다.

    해발 68m의 말이산에 있는 고분군은 면적 52만5221㎡에 남북 길이가 2.5㎞에 이른다. 아라가야의 도읍지였던 만큼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37기의 대형 고분들이 능선을 타고 도열해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4국시대 때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구야국)와 함께 전기 가야시대 양대 축을 이뤘던 아라가야의 찬란한 문화와 힘을 느낄 수 있다.

    북쪽에 있는 1호 고분을 시작으로 남쪽끝 37호 고분까지 나무데크나 시멘트, 흙길 등이 쭉 이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멀리 너른 들과 만난다. 백성들이 곡식을 심고 거두면서 웃고 즐기던 이 공간을 언제든 볼 수 있는 이곳 능선에 영원히 쉴 터전을 만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이 땅을 호령했던 이름 모를 가야의 왕과 부족의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봄날의 따뜻한 볕을 벗 삼아 주민들이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다.

    고분군 중 가장 우뚝 솟은 고분은 4호분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일본 학자인 이마니시 류가 처음 발굴했다는 이 무덤은 둘레가 40m, 높이가 9.75m에 이른다. 당시 이 고분에서는 칼자루가 둥근 환두대도와 토기류 등 유물 140여 점이 무더기로 쏟아졌다고 한다.

    박희도 함안군청 주무관은 “고분군이 위치한 곳을 끝 말자를 써서 말산(末山)이라 부르지만 실제 말산은 말이산으로 불렸고 말이산(末伊山)은 마리산, 즉 머리산이었다”면서 “아라가야의 시조가 등장하고, 역대 왕들이 묻혔던 우두머리의 산이었다”고 설명했다.

    교과서를 통해 배운 아라가야도 당시의 이름이 아니라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께 안야국(安邪國)이 터를 잡았다. 이후 안라국(安羅國)으로 성장,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침입 등 위기를 잘 넘기고 함안, 마산 진동만과 현동, 의령, 진주 서부 일부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의 틈새에서 동맹과 자주 외교를 통해 힘을 확장했지만 끝내 실패, 561년께 신라에 복속되는 비운을 맞는다.

    낙동강과 남강 일대를 호령했던 위세가 수긍갈 만큼 고분군의 규모도 대단하다. 다만, 고분군에 대한 역사 기록이 미미하다는 점은 참 안타깝다. 군은 올해부터 고분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한다. 잊혀진 아라가야의 역사가 긴 잠에서 깨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함안박물관= 말이산 아라가야 고분은 현재까지 모두 6기가 발굴됐다. 그러나 관리 부재로 도굴이 잦았고 2009년 12월에는 도굴꾼 2명이 고분 2기에 매장돼 있던 삼국시대 항아리 등 35점을 도굴해 중개업자에게 넘기다 붙잡히기도 했다.

    이 같은 자성 속에 탄생한 것이 함안박물관이다. 1만7196㎡에 75억원이 투입된 이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전시관과 소공연장,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다.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아라가야 출토 유물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마갑총을 비롯한 환두대도, 각종 토기류 등이 현장감 있게 전시돼 있다.

    함안군청은 홈페이지에서 “공자 모양의 굽다리접시(工字形 高杯), 불꽃 모양의 창을 낸 굽다리접시(火焰型透窓高杯)는 아라가야가 여러 가야 중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정치세력이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각종 큰칼·갑옷·말갑옷·새가 달린 미늘쇠(有刺利器) 같은 철제품과 금·은·유리·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아라가야 왕의 강력한 위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특히 고분군의 출토품과 같은 유물이 동래·경주·일본에서 확인되는 만큼 신라, 일본 열도까지 수출됐다고 덧붙였다.



    ◆여행의 지혜= 고분군을 따라서 쭉 걸어보는 것을 권한다. 2.5㎞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당시의 웅혼했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해질 무렵, 고분군 능선에서 아래쪽 드넓은 들녘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군주가 돼 들에서 작업하는 일꾼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박물관 2층의 전망대에서 고분군을 내려다보면서 조망하는 것을 추천한다.

    8호 고분군에서 4호 고분군으로 이르는 포장도로를 걷기보다 고분군 사이로 난 잔디를 밟길 권한다.

    박물관 앞 주차장 등 곳곳에 문덕수 시인 등 함안 출신 시인들의 시가 담긴 안내판을 읽는 재미는 박물관 여행이 주는 덤이다. 인근의 함주공원, 성산산성, 조순장군비, 박한주비, 아라왕궁지, 함안 성산산성, 근재집 책판, 우졸재 박한주비 등도 둘러볼 만하다.

    이병문기자 bm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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