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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보의 논술탐험] (97) '학교폭력 예방 백일장'에서 찾는 인성교육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글을 쓰게 하려면…

  • 기사입력 : 2012-04-25 13: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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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 초 어느 고교 교장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받았습니다. '학교폭력 예방'을 주제로 교내 백일장을 했는데, 입상작품을 신문에 실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답니다. 요즘 신문에 학생들의 글솜씨를 자랑하는 공간은 사라졌다고 봐야 하거든요. 학생들의 작품을 소개하더라도 어떻게 쓴 게 잘 쓴 글인지, 아니면 조금 허술한 글을 예로 들며 이런저런 내용을 추가해서 다듬으면 더 나은 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이 담긴 기사를 쓰기 때문이죠.
     
    특정 학교의 백일장 입상 작품을 신문에 게재하는 건, 학교 홍보에 그칠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글파일에 담긴 입상 작품들을 읽어 보았답니다.
     
    다 읽고 나서 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왜 그 교장선생님이 논술 담당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학교폭력 예방 백일장이라면, '그저 그런 행사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졌던 제가 부끄러웠어요. 논술탐험이라는 난을 맡아 오면서 '글은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강조해놓고선, 마음으로 쓰는 글의 교육적 효과는 망각해버린 건 아닌지 자책감이 들기까지 했으니까요.
     


    메일을 보내온 분은 경남애니메이션고교 김재호 교장선생님입니다. 작품 내용을 신문에 실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게 하려는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내온 글 중에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낸 같은 반 아이를 어느 순간 자신도 다른 아이들처럼 따돌림하고 말았던 한 학생의 반성이 담긴 글입니다. <작품 원문은 아래 뒤쪽에 게재>
     
    오늘 논술탐험에서 이 글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려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한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이 학생은 이제 더 이상 따돌림하는 학생들의 대열에 서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많은 학교에서 이와 비슷한 주제로 백일장을 하겠죠. 담당 선생님들께 한 가지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글쓰기나 백일장을 할 땐 학생들이 일단 부담을 갖습니다. 특히 주제를 '학교폭력 예방'이라고 해놓으면 더욱 그러하겠죠. 대부분 학생들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봤던 기사를 엮어 '과제 제출용'으로 만족하는 게 현실 아닌가요?
     
    학생들이 마음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주제를 좁혀 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나 '내가 마음 아프게 한 친구' 같은 주제로 글을 쓰도록 해 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오늘 소개한 '내 친구 소연이'와 같은 글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친구의 입장이 되어 써 보는 글을 통해 학생들이 친구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겁니다. 학교폭력 예방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편집부장 sim@knnews.co.kr
     


    <경남애니메이션고 친구의 날 백일장 대회 입상작>

    내 친구 소연이 -박00(1학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저는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신도시랍시고 기대를 안고 도착한 이곳은 산이 반, 아파트가 반이었습니다. 그 동네 내가 전학을 가게 된 그 학교는 처음에 입학했던 학생 수보다 각지에서 저처럼 전학을 온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처럼 바로 옆 분단 맨 뒷줄에 앉아있던 아이와 처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소연(가명)이었습니다. 저보다 불과 2주 전쯤에 전학을 왔던 소연이도 여기서 꽤나 떨어진 곳에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차츰 소연이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연이네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하루 해가 지고 어스름 달이 뜰 때까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소연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연이의 언니라고 했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듯했던 소연이의 언니는 지적 장애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였을까,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거부감도, 어떠한 편견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할 사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변함없이 친했고 소연이와 나, 그리고 가끔은 소연이네 언니도 함께 어울려 놀았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놀던 우리는 정말로 행복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 후, 저는 다른 내 또래 여자애들처럼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곳은 소연이가 다니는 곳이었습니다. 학교, 학원, 그리고 그 외의 곳에서도 우리는 붙어 다니는 찰떡친구였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같은 반일 수는 없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얼굴 보는 횟수가 차차 줄었지만 학원에서 자주 보면서 예전처럼 놀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점점 커가면서 바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학원을 두어 개 더 다니게 되었고 소연이도 공부방을 다니게 되면서 학원에서 같은 시간대에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집이 가까워서 가끔 만나거나 얼굴을 보면 항상 인사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벌써 고학년이 다 되었을 즈음, 소연이와 인사하는 것을 보던 내 단짝이 소연이와 친하냐며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예전부터 내 친구였다고 말자, 내 단짝은 질겁을 하더니 소연이의 욕을 서슴없이 뱉어냈습니다. 소연이네 언니가 지적 장애인이라는 둥, 그 영향을 받아서 소연이가 말을 조금 어눌하게 하는 거라는 둥 내가 평소에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던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소연이와 몸이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지게 되니 내 단짝이 소연이의 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연이와 함께 지내면 나 또한 그런 말을 뒤에서 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차츰 소연이를 조금씩 피해 다닐 때, 우리는 또다시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학원에서 만난 소연이는 손을 잡고 좋아라 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소연이는 학교에서 '왕따'가 되어 있었습니다. 소연이의 집안 사정과 어눌한 말씨는 이미 전교생의 비웃음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로 인해 소연이가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친한 친구들은 모두 소연이를 싫어했고, 저 또한 내 친구들을 잃을까 두려워 소연이에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직접 상처를 준 적도 있었습니다. 소연이에게 상처가 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다른 주변사람들과 동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만큼 나약하고 비겁한 아이였습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소연이는 더 이상 제게 다가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위로해주는 친구 없이 혼자서 울고 있는 소연이의 뒷모습을 보며 크나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연이도 저와 같은 학교였습니다.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저는 다시 소연이의 마음을 열어 친해지고자 노력했습니다. 착한 소연이는 항상 내가 아는 척하고 장난칠 때마다 웃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역겨워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라면 분명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저주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과거를 후회하다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또 점점 잊혀져 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교에는 이미 소연이가 없었습니다. 전학을 간 것입니다. 왕따로 인한 전학은 아니었지만 슬퍼해 주는 친구, 배웅해 주는 친구 하나 없이 멀리 이사를 갔을 소연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내 친구. 그리고 가해자들 편에 서 있었던 나. 저는 지금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의 무관심 때문에 친했던 친구에게 상처를 줄 것을 알았더라면, 제가 지금 이렇게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살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그때 당당하게 소연이의 옆에 서서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많은 아이들의 무시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살아가면서 절대로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에야 모르겠지만 분명 시간이 흐르고 과거를 떠올리면 그 죄책감의 무게만큼, 내가 못박았던 그 사람의 상처만큼 후회하고 힘이 듭니다. 나는 기회가 생기면 소연이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지난날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가끔 소연이 생각이 날 때면 어린 시절 소연이와 함께했던 추억과 우정이 아닌, 후회와 죄책감만이 생생히 떠오르니까요. 그건 정말이지 슬픈 사실입니다. 이기적이지만, 나는 소연이에게 지난날에 대한 용서를 직접 구하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고서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후, 예전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소연이의 휴대폰 번호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두근거렸습니다. 소연이에게 직접 연락해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내 소중한 친구와 다시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늦은 새벽이지만 나는 소연이에게 문자를 했고, 아침쯤에나 답장이 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습니다. 뜬금없는 나의 문자에도 기쁘게 답장해주면서, 지난날의 나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너그러이 받아주며 다 잊었다고 말하는 내 친구에게 다시금 또 미안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면 주는 만큼 나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바로 후회와 죄책감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나 하나로 인하여 지금 저 아이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종종 소연이와 연락하며 다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해 볼 것입니다. 오랜 시간을 둘러와서 다시 만난 소중한 친구인 만큼 다시 행복한 우정을 쌓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뼈저리게 느낀 이 교훈으로 제 자신이 조금 더 성숙해졌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를 용서해주고 성숙하게 만들어 준 소연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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