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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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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푸른 신호등- 이동이(수필가)

  • 기사입력 : 2012-04-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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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뭇가지마다 온통 연록의 봄빛이 물들었다. 야트막한 담장을 안고 핀 조팝나무꽃도 봄의 풍경이 되고자 뽀얀 얼굴을 내민다. 어디 그뿐이랴. 감각적인 선을 가진 튤립도, 수줍은 듯 꽃잎을 여는 영산홍도 제 색을 풀어내느라 한창이다. 역동적인 그들의 숨결에 이끌리다 보니 끙끙대며 고민하던 일들이 술술 풀릴 것 같다. 행복과 불행은 선택이라 했다. 이왕이면 행복의 손을 맞잡고 가는 생이 한결 낫지 않을까.

    상쾌한 기분으로 봄을 만끽하고 있는데, 갑자기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횡단보도의 푸른 신호등은 아직 켜지지도 않았는데 대여섯 명의 학생이 우르르 차도를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뛰어 갔던가 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눈대중으로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일까. 하지만 신호체계를 믿고 속력을 내던 운전자는 얼마나 황당하고 당혹스러웠겠는가.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학생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지르니 두어 번 머리를 긁적대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장난 삼아 한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나 지각없는 태도였다. 더욱이 멀뚱히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는 주변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감정 없는 조형물인 것만 같아 오싹하기까지 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요즘 사회인들 사이에 만연한 ‘무관심’의 단편인 것 같다.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직접적인 득실 없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며.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도 달갑게 생각지 않는다. 괜한 일에 관여했다가는 언제 자신이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방어기제가 어느새 마음 깊이 자리한 탓이다.

    90년대 아이들 교과서에 나오던 ‘핵가족화’,‘개인주의’와 같은 단어들이 이제 크게 낯설지 않은 만큼, 우리의 삶 곳곳은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세상은 더욱 각박해져만 간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잔혹한 범죄 사건들, 그 기저에도 분명 무관심과 이기주의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바로 지척에서 일어난 납치와 격렬하다 못해 처절한 저항, 비명. 그 시각 이웃은 진정 모든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인지되는 감각조차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알고리즘의 시발은 더욱 안타깝다. 물론 이상심리와 극단적 선택이라는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범죄자이지만 그의 인생은 ‘고독’했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세상 속에 혼자라고 느낄 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인간임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확실히 볼 수가 없다. 항상 거울을 통해 비춰볼 뿐이다. 그것도 앞모습만 보았지 다른 모습이 어떤지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나 아닌 타인이다. 그들은 나의 웃는 모습과 찡그리는 표정을 통해 내 마음을 읽고, 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시선을 떼지 않고 평가하여 나를 일깨워준다.

    내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나를 보고 내가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느끼고, 나의 판단과는 또 다른 판단으로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내가 늘 피드백과 관계 속에서 발전해 나간다면 그 얼마나 축복받은 삶이겠는가.

    비단 이러한 흉악한 범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았더라면’,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하는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타인의 눈과 시선을 마주해야 함이 우선일 게다.

    누구나 때때로 자신의 존재성에 대해 의문이 따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서 나의 존재는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정립되곤 한다. 작고 큰 돌들이 서로를 떠받치고 보듬어 돌담을 이루듯이 모자란 것은 모자란 것이 채워주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닐까.

    푸른 신호등이 들어왔다. 마치 정지해 있던 시간이 흘러가듯 각양각색의 차를 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와 호흡을 맞추며 나아간다. 다만 가다가 멈출 수 없는 인생이기에, 보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의지해가며 이 긴 여정을 안전히 마칠 때까지 미소 지으며 달려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동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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