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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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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정치는 인간의 시녀- 정진남(시인)

  • 기사입력 : 2012-05-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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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인간은 정치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심지어 갓난아이마저도.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정치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7~8년 전쯤 절친한 친구가 어떤 선거에 출마하니 후원비를 내라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나는 정치라는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딱 짜증 나서 정치와 관계하고 싶지 않으니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부득부득 우기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한동안 눈치를 봐야 하는 경험을 했다. 결국 주고 말았지만.

    그런 나마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거수일투족이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라에서 정해 놓은 교통규범을 따라야 하고, 정해진 세금을 바친다. 또 공원은 금연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앞에 가는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면 경범죄로 신고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공원의 맑은 공기 대신 담배를 간접적으로 피우면서 산책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정치적이다. 심지어 눈을 감고 잘 때마저도 우리 집 계량기는 어둠 속에서 나라가 정한 가격으로 돌아가고 다음 날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나라가 정한 학교에 무사히 보내기 위해 미리 수면을 취한다. 함께 사는 가족 역시 결혼제도에 뿌리 깊게 바탕을 둔 정치적인 생활이다.

    얼마 전 총선과 지방 보궐선거가 있었다. 어떤 형식이든지 선거를 치르고 난 뒤 남는 감정은 씁쓸하다. 많은 후보들과 당선자들로부터 ‘나도 한번 해먹어 봐야지’식의 태도를 읽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그 자리에서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를 진지하게 설파하는 사람은 쉽게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의 눈에 들까 자신을 속이며 사랑을 구걸하는 사랑의 거지들을 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당대 사회체제에서 빚어내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율도국 건설을 자처하고 나선 ‘홍길동’과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의 ‘허생’ 같은 사람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말이다. ‘홍’과 ‘허’는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10원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들의 삶은 유효하다.

    선거에서의 당선은 엄청난 심부름꾼의 마음을 가졌고 실천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주어지는 명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당선자들의 선거 전과 후의 행동을 보면 천양지차다. 선거운동을 할 때는 어떤 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최대한 만들어 갖다 붙이면서 들이댄다. 고등학교 때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친구 아이가’ 하지 않나, 또 고등학교 때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배가 나타나 선배 대접을 요구한다.

    어린 시절 같은 땅을 밟고 다녔던 동창, 동문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미치고 환장할 지경의 심정이 된다. 함께했던 추억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친구나, 선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처녀에게 웬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내가 너의 시어머니다’ 하는 꼴이다.

    애초에 학연, 지연에 얽매여서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예의 사람들이 당선됐을 때 그들을 돕고 도운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헌신하는가, 자신의 정책과 공약의 실현인 깨끗한 정치와 국민과 시민을 위해 헌신하는가. 얼굴 싹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 봐 온 것이 아니다.

    권력자와 평범한 시민의 차이는 하는 일의 차이다. 대(對)국가적인 국민을 위한 일과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두자. 위계질서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거나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당선만 되면 심부름꾼의 이미지보다 벼슬 한자리를 차지한 사람 쪽으로 기운다.

    모든 사람들이 정치 운운하는 건 좋건 싫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에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그래서 정치인에게 주어지는 모든 혜택은 대국민 봉사를 위해 주어지는 특권이다. 단돈 1원이라도 개인과 사적인 이득을 위해 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들의 시녀를 감시해야 한다.

    정진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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