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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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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의령 한우산 임도

길은, 굽이굽이 몸을 꺾으며 흘러갑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15㎞에 이르는 굽이진 산길은

  • 기사입력 : 2012-05-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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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가 넘게 의령 한우산을 꼬불꼬불 감아도는 임도./성민건기자/


    6·25전쟁 이후 불어닥친 이데올로기의 잔상들은 평범한 농촌마을도 비켜가지 않았다. 친미파와 빨갱이로 대변되는 이념의 갈등 속에 평화로운 농촌마을 사람들은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그렇게 파괴돼 갔다.

    끝내 몰락한 최씨(안성기 분)의 가족이 첫닭이 우는 새벽, 우마차에 몸을 싣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행여 있을지도 모를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가는 모습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1998년 이광모 감독의 야심작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한 장면이다.

    2시간 분량의 이 영화 중 마지막 4분 정도 분량이 의령 한우산에서 촬영됐다. 4분이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이 인생의 역경처럼 오버랩되면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이광모 감독은 사실 묘사에 최대한 접근하기 위해 직접 전국을 다니며 장소를 물색했다. 1997년 12월 어느 자동차 회사의 동호회 소식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감독, 조감독 카메라 일행이 이곳을 찾았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한 최적지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전봇대, 전깃줄, 시멘트 도로도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 당시 한우산 임도였다. 현재는 영화를 촬영할 당시의 비포장은 아니지만 그때 그 꼬불꼬불 굽이진 길은 여전하다.





    고난의 인생길로 표현됐던 한우산(836m)의 그 길이 잔인한 달 4월에는 엷은 진달래 꽃봉오리를 틔우더니, 5월에는 철쭉 선홍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것이 망가지고 떠나지만 새 세상을 찾는 희망처럼 5월의 한우산은 푸름 그 자체다.

    한우산은 영화 속 배경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방으로 펼쳐진 봉우리와 계곡이며, 능선과 임도를 따라 피어나는 진달래, 개나리, 가을이면 억새로 은빛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한우산 일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굽이진 산길을 즐기려면 드라이브를 택하는 것이 좋다.

    15㎞가 넘게 한우산을 감아도는 임도에서 내려다보는 산세는 환상적이다.

    코스는 다양하다. 가례면 갑을리와 칠곡·대의면에서 쇠목재를 거쳐 한우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가례면 봉림마을 뒤로 오르는 코스 등 한우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남동쪽으로 산길이 이어지며 궁류면 입사마을과 연결되고, 정곡면에서 유곡면으로 넘어가는 막실고개와 연결돼 산길 드라이브 코스로 환상적이다.

    한우산은 의령의 최고봉인 자굴산을 마주하고 있어 등산에도 최고점을 줄 수 있다.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궁류면 벽계마을에서 등산로를 따라 한우·자굴산을 거쳐 가례면으로 가는 코스가 제대로된 산행이다. 하지만 2~3시간 코스의 자굴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한우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절경을 이루는데 둘러봐야 할 곳이 찰비계곡이다. 이곳은 무더운 여름에도 겨울비처럼 찬비가 내린다 해 일명 찰비계곡으로 불리는 벽계계곡이다. 한우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의 길이가 3㎞에 이르며 곳곳에 전설을 간직한 소(沼)가 많다.

    한우산을 충분히 즐겼다면 궁류면의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알려진 일붕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일붕사 옆의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봉황대의 경관도 즐겨볼 만하다.

    지난 5일에는 한우산 철쭉제가 열렸다.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철쭉의 장관과 함께 오색으로 수놓은 패러글라이딩과 사람의 물결이 한우산을 뒤덮었다.

    영화가 촬영되기 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우산의 임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직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와 본 사람이라면 다시 발길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한우산에 오면 영화 속 이념이니 전쟁이니 하는 것은 없고, 삶의 힘든 부분도 게 눈 감추듯 사그라든다. 우마차에 짐을 싣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떠나가는 모습처럼.

    전강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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