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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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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오월처럼 나무처럼- 옥영숙(시인)

  • 기사입력 : 2012-05-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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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고 행동하는 오월이다. 화목의 꽃이 피고 감사하는 오월이다.

    어린이에게 사랑과 희망을, 어르신에게 편안함과 공경을 전하는 달이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는 자녀사랑으로 채워 넘치는 어버이의 사랑도 있다. 오월은 일 년 열두 달 중에 계절의 여왕답게 싱그럽고 생명력이 넘친다. 병풍 속에 그려진 난초도 꽃을 피우고 파랑새도 운다는 달이다.

    오월의 수목원은 푸름이 짙어가고 부드러운 바람이 잎사귀를 흔들 때마다 연둣빛으로 말을 한다. 사랑의 밀어를 담아 놓은 듯 금낭화는 조롱조롱 꽃주머니를 달고 발길을 사로잡고, 보이지 않는 미풍에 활짝 핀 이팝나무를 흔들 때마다 온 천지가 환해진다. 보고만 있어도 하얀 쌀밥 같은 꽃에 마음이 푸근해지고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물고기를 떼로 잡는다는 때죽나무에 꽃이 피면 희디 흰 별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땅바닥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오월이 되면 온 강산을 하얗게 물들이고 향기로 가득 채우는 아카시. 아카시는 우리에게 그리움의 향수다. 어릴 적 꽃잎을 따서 꿀을 빨아먹기도 하고 초록 잎은 가위바위보 내기하며 서로 잎을 뜯어내는 놀이였다. 유년의 기억 속으로 이끄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꽃이다. 꽃잎을 따서 튀김옷을 입혀 튀김을 하면 향기로운 꽃향기로 가득 찬 일품요리가 된다. 또한 꽃 샐러드나 꽃얼음으로 얼기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 토종 장미인 찔레꽃도 있다. 야산의 길섶이며 후미진 곳에 연한 분홍색이나 하얀색으로 수를 놓듯이, 순하고 깨끗한 마음 같은 찔레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닮은 꽃이라 하여 인선화(人善花)라는 뜻을 담은 이름도 지녔다. 향이 은은하고 담백해서 우리 꽃차로 장미차보다 더 부드럽다.

    푸른 보리밭과 펼쳐진 밀밭이 뭉게구름과 같이 출렁거린다. 지천으로 핀 줄장미가 울타리 너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화사하고 매혹적인 웃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미꽃 너머로 누군가에게 저 가시처럼 상처가 되고 생채기를 만들지 않았나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영혼의 뜨락은 오월의 바람처럼 자유롭고 싱그럽고 싶다. 겨울 긴 잠자고 일어난 생명의 색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싶다. 초록은 희망이고 기다림이다. 연둣빛은 새로 시작하는 출발의 색임과 동시에 잘 죽어서 다시 살아난 색. 윤회의 색이라고 부르고 싶다. 잘 썩은 겨울을 지나야만 맞이하는 생명의 색이다. 그것은 암울한 겨울을 보내고 맞이하는 환희다.

    인간이나 식물에게도 고난이 있게 마련이다. 무엇인들 왕성한 활동의 청년기가 있고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좌절을 맛보는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한파와 역경을 잘 극복한 자만이 튼실한 줄기와 가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잘 썩어야 제대로 된 거름이 될 수 있다. 설익어 뒷간 냄새처럼 악취를 풍기지나 않는지 생각하는 영혼의 뜨락. 곰삭은 두엄이 향기로운 거름을 만들 수 있다. 일상이란 이유로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지치고 힘들어질 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얻는 영혼의 뜨락. 행여 주춤거리거나 뒤처져 있을 때 길들여진 초조함에 기다림의 배경이 되고 휴식처가 되는 뜨락을 가꿔야 한다.

    오늘도 꽃은 피고지고 바람이 분다.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슴 벅차오르는 마음을 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내 영혼의 뜨락에는 얼마나 많은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씨 뿌리고 땀 흘린 영혼의 뜨락에 시원한 바람이 되고 은은한 꽃향기가 되는 물주기와 가꾸기를 거듭해야 한다. 그저 얻어지는 성공이 있을 수 없듯이 노력의 결실 뒤에 성취감과 더불어 영광의 웃음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옥영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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