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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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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보훈(報勳)의 의미를 되새기며- 정기홍(논설위원)

조국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 존경과 걸맞은 보상해야

  • 기사입력 : 2012-06-0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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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16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70년 베트남 전쟁에서 전우를 구하다 전사했지만 서류 분실로 훈장을 받지 못했던 레슬리 세이보 상병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이보 상병의 부인을 백악관으로 초청, 훈장을 건넸다. 오바마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참전용사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현실은 수치스러운 일, 다시는 이런 실수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미국은 두 가지를 느끼게 했다. 42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임기를 다 채우고 연금을 받는 장군보다 생명을 바친 사병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명만큼 더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인이 사망하면 전공(戰功)을 기준으로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눠 장례를 치른다. 우리의 태극무공훈장에 해당하는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장병의 장례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한다. 프랑스와 호주는 2000년대 들어 각자 1차대전의 마지막 참전 용사가 숨지자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특히 호주는 전국에 반기(半旗)를 걸었고 총리가 해외 방문 중 서둘러 귀국하기도 했다.

    또 선진국일수록 전쟁 영웅의 계급을 따지지 않는다. 파리의 개선문 아래 ‘여기 조국을 위해 숨진 한 병사가 있다’는 묘비가 서 있다.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는 정신이다. 국가가 이 같은 일에 소홀하면, 목숨 바쳐 싸울 사람은 없어지고, 국가는 순식간 위태로워질 수 있다.

    보훈, 그것은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 민주화를 위해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에 대해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다.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고 있는지. ‘존경’의 사회적 환경은 조성돼 있는지.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참전용사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현실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지만, 미국의 경우 예컨대 명예훈장 수훈자는 월 1100달러 특별수당에다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보훈 여건도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무공수훈자는 등급에 관계없이 월 18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여전히 냉대받는 셈이다. 그렇다고 눈치를 봐가며 정치적으로 ‘퍼주기’ 식의 보훈정책은 안 된다.

    사회적 존경심은 어떠한가. 국가와 국민의 관심이 경제로 집중될수록 보훈에 대한 무관심은 더해지고, 시간은 이를 망각하게 한다.

    유럽에서 가장 앞선 보훈정책을 가진 프랑스는 ‘역사적인’ 것에서 ‘기억적인’ 것으로, 다시 ‘기념적인’것으로 변천돼 왔다. 프랑스의 보훈이념은 ‘기억과 연대’로 요약되고, 프랑스 보훈정책은 ‘기억의 정치’로 불리고 있다. 이 점은 한국의 국회의원을 비롯, 광역·기초자치단체 의원들과 국민이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보상과 존경. 지금까지 다분히 국가유공자는 보수에서, 민주화유공자는 진보에서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보훈에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이 절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더더욱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도 안 된다.

    우리가 일상이라는 매일의 행복을 느끼고, 맡은 일에 때론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다친 사람들, 지금도 병상에서 고통받는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정부가 예산 부족 등 이유를 들어 공신들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직무유기다. 특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안보는 보훈정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忠)은 한국의 전통적 자산이다. 충과 보훈이 점차 퇴색돼 가는 것 같아 이달에 다시 생각해본다.

    정기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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