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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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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넝쿨째 뿌리 뽑아야 할 가정폭력- 서정희(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원마산지부 소장)

피해자 보호 위해 주거형태 개선·자립 지원 병행해야

  • 기사입력 : 2012-06-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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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 여성회의에서 ‘여성과 소녀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방지하고 철폐하는 선언’이 채택되면서 공식적으로 가정폭력을 사회문제의 한 분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가지게 됐고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1997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하지만 관련 법률이 제정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정폭력은 대물림돼 가정이 피폐해지고, 학교폭력으로,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폭력 재생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보완돼야 할 문제가 많지만 현장에서 볼 때, 폭력피해자들에 대한 보호와 안전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된다. 피해자와 자녀의 보호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첫째, 그들의 필요, 둘째, 그들의 욕구’에 민감하고 탄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보호책들이 가장 먼저 보완되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들의 안전을 위해 가정폭력사건 발생 시 경찰의 신속한 출동,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가정폭력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어떠한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이후 폭력 상황이나 피해자의 안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경찰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초기 대응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제껏 경찰의 초기 대응은 사실상 미흡한 면이 많았다. 가정폭력을 집안문제로 보는 인식의 문제도 있지만 가해자가 문을 열어 주지 않거나 폭력상황이 종료됐을 경우, 경찰이 영장 없이 주거에 들어가서 피해자를 강제로 대면할 수 없는 형사소송법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해 지난 5월 2일부터 시행됐다. ‘가정폭력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행위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신고된 현장에 출입해 직접 피해자의 안전 여부 등을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입된 경찰의 ‘현장출입 및 조사권’은 지난해 10월 26일 도입된 경찰의 ‘긴급임시조치권’과 법원의 ‘피해자보호명령제’와 함께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개입을 한층 강화시켜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사건 초기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피해자의 보호와 자녀의 양육을 위한 주거 안정의 ‘욕구’도 중요한 문제이다. 가정폭력은 여타 폭력사건들과 달리 자녀의 학교 문제, 주거의 불안정 때문에 폭력 재발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집에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피해자의 보호와 자녀의 양육을 위해 주거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이 필요하다. 독일은 가정폭력 관련법에 피해자가 가해자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거를 단독으로 사용할 것을 요청할 수 있는 주거양도 요구권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현 주거지에 대한 사용권조차도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가정폭력피해자들에게 주거지원을 하고 있는 수준이다. 피해자들이 한 집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차치하더라도 주거에 대한 보증금만 지급될 뿐이고 모든 비용을 피해자가 부담하게 돼 있어 사실상 자립능력이 없으면 퇴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주거형태의 개선이나 자립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병행돼야 하며, 지자체 차원에서 우선 조치를 행한 후 구상권을 행사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방안과 함께 주거지원 사업을 확대하고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피해자’에 대한 최선의 보호정책이 미래의 가정폭력과 사회적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서정희(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원마산지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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