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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성과사회의 그늘을 애도하다- 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2-06-1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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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혹하다. 아니 끔찍하다. 어떻게 부모의 눈앞에서 저런 가장 참담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니! 지난 10일 기사를 검색하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16살 고등학교 학생이 아파트 13층에서 투신자살을 한 내용을 살펴보다 진저리를 치다 못해 치가 떨리는 느낌을 갖는다. 무엇이 알토란 같은 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도대체 누가,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가.

    커 가는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눈을 감았다 머리를 저었다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도 가슴 한편으로 싹터 오는 불안과 분노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튿날도 경기도 하남시의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역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기사에 아예 할 말을 잃는다. 연일 아이들이 성적에, 학교 폭력에 자신의 생때같은 목숨을 저리 쉽게 내어놓는 상황 앞에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죽음 행진을 막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다.

    하늘이 노랗다는 말이 있다. 너무 기가 차고 분해 할 말을 잃을 때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 고양시에서 발생한 기사의 내용을 더 보면, 그날 아버지가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려고 아들 방에 들어가자 아이가 아파트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 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말리려 하는 도중에 말을 듣지 않고 그냥 뛰어내리고 말았다고 하고, 방에는 “미안하다. 엄마가 원하는 학교에 갈 정도로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고 한다. 아, 이 아버지의 경우가 바로 하늘이 노란 상황이 아닐까.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막지 못한 그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 것이며, 엄마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어 미안하다는 유서를 본 그 엄마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제 삼자로서 우리는 이들의 비극이 단순히 부모와 자식 간의 의사소통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천만 만만으로 아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황폐하게 만든단 말인가. 원인 규명은 여러 층위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건대, 그 원인은 바로 우리 사회의 구조에 있지 않나 싶다. 후기자본주의에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성과 제일주의 사회로 바뀌고 말았다. 역사의 어느 시기에도 능력을 중시하지 않는 시기는 없었겠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개인의 능력을 최고도로 끌어올려 생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경제적 부를 성취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극히 일부분인 상류층의 삶을 이상적인 모델로 설정해 놓고,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자기 노력과 혁신으로 자기 관리 시스템에 들어가 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열매는 대부분 재벌로 대표되는 상위 소수에게로 집중될 뿐 일반 보통 사람들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통계가 그것을 말해준다. 중산층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자기 혁신은 하나의 장밋빛 환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부단한 자기 관리와 혁신은 결국 끝없는 자기 피로의 증식만 발생케 해 자기 파멸에 이르게 할 뿐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이를 ‘피로사회’란 이름으로 잘 설명해 놓고, 그 피로사회가 갖는 병리학적 특징으로 ‘우울증’을 언급한 내용이 이 경우에 잘 부합된다.

    문제는 이 비정한 성과사회의 그늘이 지금 우리 아이들의 삶에도 드리우고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삶을 갉아먹는 것도 모자라 막 자라나기 시작한 아이들의 생명도 지금 갉아먹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성과사회의 저 죽음의 이빨을 과연 무엇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음이 고민이다. 우리들의 하루도 노랗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김경복(문학평론가·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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