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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③ 배한봉 시인이 찾은 김달진문학관과 생가

이 골목길 걸으며 ‘청년 김달진’은 무슨 생각했을까
빗물을 흠뻑 먹은 나무는 푸른빛 내뿜고

  • 기사입력 : 2012-06-2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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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달진 생가와 돌담길. 
    김달진문학관과 흉상.
     
    김달진문학관 전시실.
     
    ‘김씨 공작소’, ‘부산라듸오’ 등 옛날 상점 간판이 재현된 골목.
     
    배한봉 시인


    부슬부슬 돋던 비가 점점 굵어지고 있다. 자동차 와이퍼(wiper)의 속도도 빨라졌다. 6월 15일 오후 3시, 창원에서 진해로 넘어가면서 듣는 빗소리는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이 비가 봄부터 이어진 가뭄을 조금이나마 해갈시켜 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안민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이어지는 진해대로를 부산 쪽으로 달리면 얼마 못가 웅천이 나오고, 곧 소사동 43번지 김달진 생가다. 김달진문학관과 나란히 있다. 비는 더 이상 굵어지지도 않고 내린다. 생가의 담장을 타고 오른 마삭줄이며 뒷산 나무들도 오랜만에 내리는 빗물을 흠뻑 먹고는 푸른빛을 한층 싱싱하게 내뿜고 있다. 생가 마당에 서서 잠시 하늘을 본다. 내륙지역 농촌에는 물이 없어 모를 내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생가는 선생이 스물여섯까지 산 ‘웅천곡’ 그 집이다. 사방을 휘둘러본다. 옛날에는 어떤 동네였을까.



    따스한 첫봄 한낮의 산기슭에 높인 마을

    새로 이인 오막살이 여남어 집

    수숫대 울타리에 빨간 빨래 조각들

    사흘 전 기원절(紀元節) 축기(祝旗)를 아직도 달아놓은 집이

    있다

    홀로 추녀 끝 그늘 밑에서

    도꾸방아 찧는 나이찬 처녀의 머리채여

    수탉이 지붕에서 훼를 치며 길게 목을 빼는 한낮의 마을

    멀리 보이는 바다 한 귀가 백금(白金)으로 빛난다.

    -김달진, <웅천곡> 전문



    생가에는 안채, 사랑채 등의 초가가 여러 채 있고, 입구 오른쪽에는 우물이 하나 있다. 마당에는 비파나무며 감나무, 가죽나무 등이 여러 그루 있다. 김달진문학관의 심화선 학예사는 감나무와 가죽나무는 선생이 이 집에 살 때 있었던 나무이니 100살도 더 먹은 나무라고 한다. 마당 한쪽 텃밭에는 무가 흰 꽃을 한껏 피우고 있다.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우란 열무우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열무우꽃-칠월의 향수>던 그 뒤란의 텃밭이다.

    생가를 나와 문학관에 들어서면 선생의 흉상이, 잘 가꿔진 소나무와 함께 방문객을 반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돌담 모양의 벽면에 선생의 인물사진이 있고, 안에는 선생의 일대기며 저서, 사진 등을 비롯한 여러 자료들이 일목요연 전시돼 있다. 김달진문학관은 2006년, 창원시와 통합되기 전에 건립됐다.

    문학관을 나와 천천히 골목의 담 모퉁이를 돌아 걸어본다. 생가를 중심으로 골목에 옛날식 상점을 재현해 놓았다. ‘부산라듸오’, ‘藝術寫眞館’, ‘김씨 공작소’, ‘태양 카라멜’ 등의 간판과 골목 풍경이 이채롭다. 청년기 때 선생은 이 골목의 담 모퉁이를 돌면서 사색을 하곤 했을 것이다. “어둔 담모랑길을 돌아가다가/ 문득 먼 하늘가의 별이 보였다/ 마음은 발길 함께 멈췄다”<별>던 선생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문득 골목길은 상상력의 결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골목을 만들며 휘어지는 흙담에는 마음의 안식처를 구성하는 향토적 상상력이 겹과 층을 이루고 있다. 향토적 상상력의 겹과 층 사이에 자라는 풍상(風霜)의 시간은 관절염에 오래 시달린 노인의 무릎처럼 뼈가 앙상하다. 그래서 향토적 상상력은 마음이 짠하고 눈시울이 시큼하다. 그 담장을 끈질기게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과 마삭줄 푸른 잎을 적시고 가는 바람이 “마음”인 듯 잠시 “발길”과 “함께 멈췄다” 다시 흐른다.

    김달진 선생은 시인이자 승려였으며, 한학자이자 교사로 일생을 살았다. 1907년 창원군 웅동,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의 웅동 소사리에서 태어나 1929년 <문예공론>에 <잡영수곡>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와 고도의 정신주의 시세계를 열었다. 1989년 영면했다. 작고 이듬해인 1990년에 선생의 문학 정신과 뜻을 기려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진해 하면 봄의 벚꽃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맞다. 우리나라에서 진해보다 더 벚꽃으로 명성을 떨치는 도시는 없다. 하동의 쌍계사 십리 벚꽃길도 있고, 서울 여의도 벚꽃도 좋지만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인 진해에 비할 바는 아니다. 벚꽃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진해에 이제는 해마다 9월이면 전국의 이곳저곳에서 문인들이 모여든다. 김달진문학제가 열리고, 김달진 문학상 시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김달진문학상은 장석남 시인과 이경수 평론가가 받는다고 한다. 장석남은 문단에서 시도 잘 쓰고 생기기도 잘 생긴 시인으로 소문나 있다. 이경수 평론가 역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이다. 시상식 뒤풀이 술맛이 좋을 것이고 술판도 걸쭉할 것이다.



    세상 그 무엇일지라도

    빛 바래지 않으려면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

    관목, 오동나무, 서까래, 종이까지도

    심지어 소리도 그늘이 있어야 맛이 난다



    심금을 찢는 대금 소리 맛보며

    벗들의 시집을 읽는다

    시의 순교자들

    그늘의 힘을 믿는다



    가슴 속에 절 한 채 넣고 다녀야지

    밤새 짓이긴 마음이 보개산 칡즙 같다 -이월춘 <그늘의 힘> 전문



    제1회 김달진 창원문학상 수상작이다. 이월춘의 시 <그늘의 힘>은 존재의 본질, 인생의 깊이를 통찰하고 있다. 장자의 물아일여(物我一如)를 시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김달진 선생의 무위자연사상, 또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이월춘은 김달진문학제가 생기기 전에 황선하, 방창갑 선생을 좌장으로 정일근 등과 진해문학회를 창립해 진해문단을 이끈 시인이다. 이들의 노고가 오늘날 진해문학의 밑거름이다.

    통기타 가수 강은철이 부른 <삼포로 가는 길>은 웅동 소사리 옆 동네인 명동의 삼포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삼포마을 뒤쪽 언덕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가 있다. 김달진문학관과 생가를 뒤로하고 마을을 빠져나오며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 발 두 발 한숨만 나오네” /글·사진=배한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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