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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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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소통과 교감- 박서영(시인)

  • 기사입력 : 2012-06-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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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한마디로 말해 보기에 불편한 어떤 것을 가리켜 우리는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그로테스크한 것이 적당한 거리감을 가질 때 그것은 도리어 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주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예술에서의 그로테스크 미학이다. 사람들은 의외로 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급기야는 이 우주의 운행은 모든 게 기묘하며, 지구의 모든 것들은 이상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그로테스크한 목록에서 빠질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 그리고 점점 추해져가는 몸은 분명 불편한 어떤 것을 감추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과 서로 부딪칠 때 일그러진 모습을 밖으로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에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평화롭다. 볼 것 안 볼 것 다 보여주다 보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였다. 좁은 차 안에서 일행은 모두 스마트폰이라는 장난감을 들고 혼자만의 놀이에 열중했다. 아무도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거나 옆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모두 스마트폰 안에 내장되어 있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어떤 이는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비디오를 다운받았다고 했고, 유행하는 성적농담을 수시로 보내주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또 한 일행은 벌써 친구가 오백 명이 넘어갔다며 좋아한다.

    평생 마음 터놓을 친구 세 명 사귀기가 힘들다는 말은 이제 콧방귀 냄새나 맡고 있어야 될 처지다. 스마트폰 안의 친구들은 너무나도 친절하고 결속력이 강해서 순식간에 바이러스를 사방에 퍼뜨려주고 그것을 즐긴다. 그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유희적 기능은 커진다. 차가운 기계는 더 이상 단순히 차가운 기계가 아니다. 무한대의 정보력을 내장하고 있는 인터넷이라는 블랙홀은 이제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언젠가 미용실에서 본 풍경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다섯 살쯤 되는 사내아이의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엄마가 가슴에 안고 있어도 계속 울기만 하는 것이다. 미용사의 가위가 머리 가까이만 가도 몸을 뒤틀며 울던 아이가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주자 울음을 뚝 그친다. 스마트폰 덕에 아이는 무사히 머리를 잘랐다. 미용사에게 물어보니 요즘 흔한 풍경이라고 한다. 울던 아이를 뚝 그치게 하는 건 이제 ‘곶감’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런 모습들이 내 눈엔 참으로 기묘하게 보인다.

    커피전문점에 둘러앉아 서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탁자를 둘러싸고 각자의 전화기만 내려다보고 있는 그 이상한 풍경. 차가운 기계와도 미적 거리를 잘 지킬 수는 없는 것일까. 세상의 욕망들은 잘 다스리면 생활의 에너지가 된다. 기계가 슬쩍 흘려주는 거짓정보가 순식간에 번져 추문을 만들고, 그 와중에 고통 받는 이가 생겨나기도 한다.

    새로운 소통의 문화에 괴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괴로워할 이유도 없질 않는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제 몸속 깊이 감춰두었던 가슴을 꺼내놓고, 서로의 눈빛을 들여다볼 때의 감정 따위가 이 시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심장은 가장 깊은 심연에 감춰놓은 것이기에 타인이 불쑥 심장을 보여줄 때의 당혹감은 불편함이었다. 그러다가 그 심장을 나에게 보여준 것이 고마워서 내 몸은 한동안 따뜻했었다. 해변의 시체도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형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주검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눈길을 돌리게 된다. 물론 기괴한 것을 좋아하는 어떤 예술가는 그 시체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미학(美學)은 불편한 이미지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다.

    또 한편으로는 환상이나 몽상을 통해 불길하고 추한 기억을 지우고 우리의 삶을 판타지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틈에서 현대인의 소통과 교감이 점점 기계와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가벼운 시각문화가 우리의 생활을 가득 채우고 있다.

    IT강국이라는 수식어 앞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나 교감에 대해 성찰해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박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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