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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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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공원서 무료 공연하는 김효겸 색소폰 연주자

“호기심에 잡은 색소폰, 마음속 아픔 치유했어요”

  • 기사입력 : 2012-06-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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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효겸 씨가 창원 가음정동 장미공원에서 시민들을 위해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효겸(46·창원시 대방동) 씨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주말마다 창원시내 공원에서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색소폰 공연을 한다.

    그가 속한 창원시내 그룹사운드 ‘안전지대 I 팀’ (색소폰 팀)은 팀 리더로서 테너색소폰 파트를 맡은 김재현(49·회사원) 씨와, 조형래(48·회사원) 씨. 김 씨, 그리고 알토색소폰 파트를 맡은 강양규 (54·전산프로그램개발업체 대표) 씨 등 모두 4명이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창원시 가음정동 장미공원에서 오후 7시부터 2시간 반가량 공연을 한다. 김 씨는 기자와 첫 인사 자리에서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이야깃거리가 되느냐”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가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색소폰 공연을 하게 된 사연을 김 씨의 내레이션 형식으로 재구성해 봤다.


    -회색빛 유년시절

    알코올중독 아버지가

    술 마신 날은 집안이 비상

    아버지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우울한 성장기 보냈어요


    -소리에 반하다

    2년6개월 전 아버지 돌아가신 후

    직장선배가 부는 색소폰 소리 반해

    인터넷 동영상 보며 독학했어요

    공원과 차 안에서 연습했고요


    -색소폰 부는 사나이

    매주 토요일 색소폰 팀과 함께

    창원 가음정동 장미공원서 공연해요

    음악 듣고 좋아하는 이웃 보면

    입가에 절로 미소 번지죠

    앞으로 독거노인 돕고 싶어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요즘

    그렇게 원망했던 아버지가 그리워…


    #1. 23일 오후 7시 창원시 가음정동 장미공원 광장. 휴일 저녁시간이지만 색소폰 팀인 ‘안전지대 I 팀’의 멤버들이 하나 둘 악기를 챙겨 공원으로 모여든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는 공연 스케줄이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공원에 모여 화음을 맞추며 공연을 시작한다. 산책하러 나온 시민들이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일부는 발길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는 사람도 있다.
     
    익숙한 가요가 연주되자 어떤 분들은 노래까지 흥얼댄다. 그러다 즉석에서 신청곡까지 적어내는 사람도 있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즐거우면 연주하는 우리도 신이 난다.

    색소폰을 배운 지는 2년 반쯤 된다. 색소폰을 배운 계기는 옛 직장 선배의 색소폰 부는 모습에 반했고, 마음을 울리는 색소폰이란 악기의 소리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색소폰을 불면서 호흡량을 늘리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 “나도 꼭 배워 봐야지. 덤으로 담배를 끊을 수 있다면 더 좋고”.

    막상 색소폰을 구입했으나 따로 시간을 내 가르쳐 줄 선생이 없었다. 다행히 인터넷에 교습 동영상이 있어서, 그걸 보고 혼자서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전자 기타를 교본 하나로 독학해 배운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도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색소폰은 기타와 달랐다. 큰 소리 때문에 집 안에서는 안 되고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연습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공원, 주차장, 때로는 자동차 안에서 연습했다. 처음에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하루 3~4시간 연습했다. 공원에서 불 땐 얼굴이 두꺼워야 했다. 조금씩 색소폰 제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초보입니다. 삑사리 나도 이해해 주세요.” “이 곡은 어려워서 못합니다. 다른 걸로 신청하세요.” 그 와중에 신청곡도 받았다.

    색소폰을 분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평소 알던 창원시 귀산동 유람선 선장이 손님들을 위해 몇 곡 불러 달라고 연락해 왔다. 뜻하지 않게 알바 아닌 알바를 한 셈이다. 거기서 모은 돈으로 색소폰도 중고지만 평소 원하던 것으로 바꿨다. 지난해와 올해엔 내 모교인 마산상고(현 용마고등학교) 총동창회에도 초청돼 연주를 했다.


    #2. 색소폰 소리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 뒤편엔 짙은 슬픔도 배어 있다. 내 고향은 마산. 내가 자란 곳은 제일여고 아래쪽이다. 1970~80년대 다들 못사는 시기였지만 내 성장기도 회색빛이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심한 주사를 하셨고,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날은 온 집안이 비상이었다. 알코올 중독 남편 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는 지난 1993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임종 전까지 끝내 완치하지 못했다. 마산 중리 동서병원에서 장기 치료를 받았지만 중독은 재발했다. 20년 동안 아버지를 모신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 심했던 시절, 나는 속으로 당신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내가 색소폰을 배우게 된 때는 대체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기와 일치한다. 오랫동안 집안에 드리우고 있던 우환이 사라졌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한다. 크게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밥은 먹고 산다.

    오늘처럼 야외에서 팀을 이뤄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날이면 마음속에 쌓였던 그 무엇이 풀어지는 것 같다. 매 주말 공연 일정이 빡빡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팀원 4명은 별일 없는 한 공연에 빠지지 않는다.

    돈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니 뿌듯하다.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이웃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우리 팀은 지난 어버이날에는 성산구 노인복지회관에서 1시간 반 동안 공연 봉사활동을 했다. 연말에는 공연도 하고 독거노인을 도울 생각이다.

    공연을 마치고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나만 특별한 아픔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힘들어 했던지…. 요즘은 그렇게 원망했던 아버지가 그립다. 죄송스런 마음도 든다. 이번 주 공연을 마치고 아버지 산소를 한번 찾아뵈어야겠다.


    글=이상규기자 sklee@knnews.co.kr

    사진=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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