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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⑤ 송창우 시인이 찾은 아라가야 함안

700년 시간의 향기 품은 아름다운 연화세계
오래된 고분 사이로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네

  • 기사입력 : 2012-07-05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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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박물관 앞에 있는 작은 연못은 아라홍련 시배지이다. 이곳에는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인 아라홍련이 오랜 세월의 비밀을 간직한 채 활짝 피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함안군청 서편 가늘고 긴 구릉에는 옛날 아라가야 사람들이 잠든 고분 50여 기(행정구역상 도항리 고분군과 말산리 고분군으로 나뉨)가 있다.


    아라홍련


    불꽃무늬굽다리접시
     



    남쪽엔 낙남정맥이 높은 성을 쌓았고, 북쪽엔 남강의 물줄기가 해자를 두른 곳. 남고북저의 땅. 함안에선 산줄기들도 남에서 북으로 내려앉고, 물도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그런 역진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까닭일까? 함안 가야에 들어서자 넥타이를 끌고 한사코 앞으로만 돌진하던 시간들도 천천히 힘을 잃는다.

    멀리 여항산 산마루는 구름에 덮여 있고, 금세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아침. 나는 함안박물관 앞 아라홍련이 피는 작은 연못가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125분의 1초. 렌즈가 한 번 열릴 때마다 꽃은 한 송이씩 더 피고, 렌즈가 한 번 닫힐 때마다 시간의 문이 깜박 닫힌다. 그 찰나를 틈타 연못 속으로 한 발짝을 더 깊숙이 밀어넣으면 거기, 700년 시간의 향기를 품고 피는 아름다운 연화세계가 있다.

    불가에선 연화세계를 일러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불국정토라지만, 오늘 내가 찾아온 연화세계는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 위에서 펼쳐진다. 발에 진흙을 잔뜩 묻히지 않고서는 연화세계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그 지극한 아름다움을 볼 수도 없다. 아시다시피 연꽃의 아름다움이란 것도 그런 진흙탕에 뿌리내린 데서부터 생겨난 것이지 않은가. 다만 진흙 속에 살면서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그 고결한 마음이 우리에겐 없는 까닭에, 불교에선 연화세계를 인간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나 지난 곳에 있다고 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한쪽 발에 진흙을 가득 묻히고 만난 아라홍련의 자태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늘을 향해 한 잎 한 잎 열리는 연분홍 꽃잎들, 꽃잎들 안에 다시 한 올 한 올 풀리고 있는 황금빛 수술들. 그리고 가장자리에 연두색의 띠를 두른 금빛 꽃턱 위로 암술들이 별처럼 뜨고 있었다. 특히 중심에서 일정한 간격들을 유지한 채 동심원을 그리며 밖으로 확장되고 있는 암술들의 기하학적 배열은 무척이나 인상적인데, 그것은 한마디로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고 빛나는 사랑의 우주라고 불러도 좋겠다.

    그러고 보면 이 아름다운 아라홍련도 700광년 걸려서 오늘 새벽에 도착한 오리온의 별빛 같은 것이다. 지난 2009년 함안 성산산성에서 열 알의 연씨가 발견되었는데, 연대 측정 결과 고려시대의 것이었다. 그중 씨알 세 개가 긴 잠에서 깨어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고, 다시 서너 해가 지난 여름 이 연못 속에서 이렇듯 수천 송이의 꽃으로 만발한 것이다. 마치 물 위에서 새로운 성단이 태어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연화세계의 아름다움에 한참을 빠져 있다가, 운동화에 스민 물이 양말을 다 적시고 바짓단으로 서서히 올라올 무렵에야, 덕지덕지 붙은 진흙들을 털어내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입구에는 옛 아라가야를 상징하는 불꽃무늬굽다리접시가 조형되어 있다. 내 삶에는 한 번도 없었던 불꽃무늬를 접시에도 새기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나는 그 실물이 보고 싶어졌다.

    불꽃무늬굽다리접시들은 2층에 있었다. 어두운 실내 때문이었을까? 연꽃 곁에 머물다 온 까닭이었을까? 굽다리접시들은 유리관 속에 피어 있는 연꽃들처럼 보였다. 그러다가는 서서히 부드러운 몸매를 드러내며 본래의 흙빛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다만 굽다리 아래쪽에 난 불꽃무늬 굽구멍만큼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한 잎의 연꽃으로 남았다. 연못에서 만났던 700년 전의 시간은 그렇게 또 곱절의 시간을 더 거슬러 1500년 전의 그릇에서 중첩된다. 그리고 다시 불꽃무늬 굽구멍이 내 어린 시절 헛간의 열쇠구멍을 떠올리게 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내가 만약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었다면, 시간을 거슬러 비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찾고 있었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굽다리 접시에 난 불꽃무늬 굽구멍에 가장 먼저 상상의 열쇠를 꽂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박물관을 나올 때 내 손에 이미 불꽃무늬 열쇠 하나가 들려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열쇠를 들고 천천히 말이산을 올랐다. 말이산으로 오르는 길은 오래된 고분들 사이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멀리서 보았을 땐 흡사 여항산을 향해 기어가는 한 마리 푸른 애벌레 같았던 구릉. 그런데 말이산 가장 높은 구릉에 서니 그 풍경은 사뭇 달라 보인다. 옛날 옛적 하늘의 별들이 떨어져 절반쯤씩 땅에 박혀 있는 듯도 싶고, 바다 위로 줄지어 선 긴 열도의 풍경 같기도 하다. 이 나지막한 말이산 능선을 따라 아라가야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가슴에 불꽃무늬를 품고 살았던 안라국(아라가야)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았던 이도 있었을 테고, 섬처럼 고독한 삶을 살았던 이도 있었을 것이다.

    문득 살아생전 그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그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집, 석문을 열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빛의 세상과는 완전히 절연한 어둠의 집에서 한 사흘 푸른 젖가슴을 지닌 여인과 누워 있고 싶은 욕망도 꿈틀거린다. 내 몸에선 이제 연꽃 향기 대신 뜨거운 불꽃의 향기가 난다. 묘하게도 죽음의 세계는 언제나 나의 시선을 삶으로 향하게 하고, 강렬한 삶의 열정을 불태우게 만든다. 그것은 고분들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가야읍의 풍경들도 마찬가지고, 고분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두 팔을 크게 휘저어가며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고분에 뿌리내리고 사는 소나무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 욕망을 품고 북쪽으로 1호분까지 갔다가 다시 남쪽 37호분을 향해 가는 길, 4호분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4호분은 말이산 고분들뿐만 아니라 가야시대 모든 고분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인데 높이가 9.7m, 지름이 39.39m에 이른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를 멈추게 한 건 그 엄청난 규모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무덤이 쓸쓸한 빈 무덤이기 때문이고, 이 무덤에 누워 있던 한 남자를 어렴풋이 만난 일이 있어서이다.

    몇 해 전 함안박물관에서 열린 ‘말이산 4호분 90년 만의 귀향’ 전시회에서, 무덤 깊은 곳 어두운 돌방 속에 누워 있던 남자의 흔적을 본 일이 있다. 1917년 교토대학의 이나미시 류 교수가 발굴한 뒤 그려놓은 그림에서였지만, 희미하게 벽화의 흔적이 남은 돌방 한가운데 그는 북쪽으로 머리를 누이고 누워 있었다. 머리맡에는 불꽃무늬굽다리접시와 토기들이 널려 있었고, 그의 영광을 상징하던 환두대도는 녹슬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그의 발아래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나란히 동쪽을 향해 누워 있었다는 것. 이른바 순장의 풍속인데 그날 나는 그림 속의 뼈로만 남은 그에게 어떤 적의를 품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그의 빈집 앞에 한참을 앉아 있자니 문득 그에게도 연민이 든다. 그는 죽어서도 빛나는, 죽어서도 외롭지 않는 사후세계를 염원했겠지만, 그러나 이제 그는 이름도 없이 그저 4호분의 유골로 명명될 뿐. 죽음이란 그런 쓸쓸한 적멸의 세계다.

    가야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낙남정맥을 넘어서 바다로 가는 길이다. 아라홍련의 잔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던 것처럼, 고분의 잔상 또한 지워지지 않아서 한참 동안은 산들이 무덤으로 보였고, 진동만에 떠 있는 푸른 섬들도 모두 무덤 같았다.

    /글·사진= 송창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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