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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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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장마- 김륭(시인)

  • 기사입력 : 2012-07-0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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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 가뭄 끝에 시작된 장마인 까닭이다. “주말 천둥 번개 소식도 반갑다”는 소리가 신문지상 위에 올라앉던 지난 주말, 나는 장편소설을 읽고 있었다. ‘마르탱 파주’의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겨우 스물다섯 나이의 소설 속 주인공 앙투안은 여러 분야의 학위를 가진 전도양양한 젊은이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의 행복을 되찾겠다며 바보가 되기로 결심한다. 지루한 장맛비와 함께 뒹굴뒹굴 읽기엔 너무 멋진 제목에 살짝 미쳐 봐도 괜찮을 줄거리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생이 그렇듯 문제는 늘 다른 데 있다. 소설 속 앙투안을 제대로 만나기도 전에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뉴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결국 ‘마르탱 파주’의 소설을 덮는다. 그리고 ‘나는’을 ‘우리는’으로 바꿔 시적(詩的)으로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뉴스 1: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서울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곳곳에 피해가 잇따랐다. 30일 오전 7시 39분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선릉역 인근 15층 건물 신축공사장에서 비계가 무너지며 인근 고압전선을 덮쳐 전신주 1개가 쓰러졌다. 이 사고로 주변 변압기 3개가 파손되고 전선 3개가 끊어져 인근 건물 5개 동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가림막 무너지고 아파트 정전…청계천은 출입 통제’란 제목으로 이 나라 대부분 언론이 도배질한 뉴스)

    뉴스 2: 대구 소재 주한미군 ‘캠프 캐롤’ 소속 방공포병대의 조셉 핀리(31) 일병은 지난 2월 한국 여성을 강간·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 25일 대구고법 항소심에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사실상 무죄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재판부는 “피해 여성과 합의했고, 피해자가 그의 처벌을 원치 않아 형을 감면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아는 한국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재판부와 피해자 가족 등 일부만 알고 넘어갔다. (‘한국女 때리고 강간한 미군이 집행유예…이유는’이란 제목으로 모신문에서 소 뒷걸음치다 겨우 잡은 듯한 뉴스)

    뉴스 3: 미국 애틀랜타의 한 교회에 들어가 여성 신도를 성폭행한 피의자에게 전대미문의 형량이 선고됐다. 애틀랜타 디캡 카운티 법원은 강도, 강간 혐의로 기소된 51살 존 카버에 대해 종신형 2회와 징역 115년을 선고했다. 카버는 지난해 2월 티머시 연합감리교회에 들어가 혼자 있던 여성 신도를 마구 때리고 칼로 위협해 성폭행한 뒤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교회 강간범에 종신형 2회+징역 115년’이란 제목의 외신)

    이쯤에서 혹자들은 물을 수도 있겠다. 장마와 ‘마르탱 파주’의 소설과 이 세 가지 뉴스가 무슨 상관이냐고. 당연히 뉴스 1을 제외하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문제는 늘 다른 데 있다. 예컨대 뉴스 1은 장마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피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뉴스 2는 사정이 다르다. 장마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장마 피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사실은 우리 언론이 아니라 해외주둔 미군 군사전문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가 먼저 보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성조지는 이어 “동두천에서 일어난 신효순 양과 심미선 양의 사망 사건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한국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그 사건은 장갑차 운전 실수에 의한 사고였는데도 그렇게 분노하면서, 어린 한국 여성을 때리고 성폭행하고도 풀려나는 미군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기가 막힐 일 아닌가. ‘마르탱 파주’의 소설을 덮고 소말리아쯤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날, 뉴스 3은 햇살보다 눈부신 누군가의 눈빛 같은 건 아닐까. mbc파업 탓만은 아니다. 까놓고 말해 MB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 나라 언론은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이 장마전선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장마는 천둥 벼락을 동반한다. 아니, 천둥 벼락을 동반해야 장마다.

    김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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