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금요칼럼] ‘천재의 기억과 바보의 기록’ 그리고 전자출판- 허충호(논설위원)

‘첨단전자산업 + 저작’ 경남의 미래 성장동력 전자출판에서 찾자

  • 기사입력 : 2012-07-06 01:00:00
  •   



  • 30여 년간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던 도내 한 금융기관장은 메모광이다. 그가 늘 들고 다니는 가로 9㎝ 세로 17㎝ 크기의 검은색 포켓노트에 적힌 글자는 돋보기를 대고 봐야 할 정도로 작다. 주요 일정은 물론, 독서하다 발견한 좋은 글귀들이 그야말로 깨알처럼 적혀 있다. 0.3㎜의 가는 펜으로 적어 간 그의 문장은 오탈자 하나 없이 정확하고 질서정연하다. 보는 이들마다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기록지상주의자인 그가 즐겨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천재의 기억보다 바보의 기록이 더 정확하다’는 말이다. 그에게 있어 기록은 기억보다 상수(上手)다.

    기록 이야기를 하자면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르도투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인류 최초의 체계적인 역사책이라고 평가되는 히스토리아(Historia)를 저술한 그에게 역사는 ‘기억의 수호자’다. 역사로 번역되는 영어 history의 어원은 ‘찾아서 안다’는 뜻의 그리스어 히스토리아다(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의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다’ ‘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위키백과’ 인용). 말의 뿌리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알아볼 수 있게 기록하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기록의 역사가 출판이다. 출판은 다시 문명과 함께 진화했다. 질긴 재료에 쉬 사라지지 않는 물감으로 생각이나 화상을 남기는 일을 전통적 출판이라고 한다면 미래의 출판은 아마도 전자출판(electronic publishing)일 것이다. ‘종이 없는 시대’를 주창하는 이들의 전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전자출판이다. 첨단 전자산업과 저작을 접목한 이 전자출판이 아직 대세는 아니라고 해도 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개인적으로 출판에 관한 한 투박한 전통방식이 좋다는 아날로그식 사고에 사로잡혀 있지만 밀려드는 큰 물줄기를 손바닥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필요한 서적을 구입하고 읽어볼 수 있는 시대가 된 지도 벌써 오랜 일이니 무조건 손사래만 칠 수도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했던가.

    최근 경남에서 처음으로 전자출판협회가 창립한 것도 그런 물결 중 하나다. 혹자는 세계 전자출판산업이 2014년까지 연평균 27.2%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4년 82억6000만 달러 규모는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니 협회 창립이 때늦은 감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1년 2월 출판문화산업 진흥 정책을 통해 오는 2014년까지 630억 원을 투입, 전자출판시장을 7000억 원 규모로 확대해 3조 원 안팎에서 정체되고 있는 종이책 출판시장을 대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러 파도를 일으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상대 이종문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종이의 발명은 혁명적 사건이지만 디지털에 밀리고 있다. 디지털이라는 매체는 다가와 있고 이미 동화됐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변화의 패러다임을 이미 읽었고 일부 기업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현실이다. 국내에서만 본다면 경남의 문화콘텐츠산업은 패러다임을 읽은 것은 고사하고 국내 빠른 도시와 10년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인쇄산업이 열악하다지만 전자출판산업의 실상이 더 참담하다.

    경남의 새로운 먹거리를 위해 전자출판에 눈을 돌릴 때가 됐다. 전통적인 ‘무거운 산업(heavy industry)’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어쩜 가장 빠를 때일 수 있다. 전자출판은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이 가능한 분야다. 융합 연관 산업과 동반성장도 가능한 다채널 산업이다.

    지난 6월 15일 창원문화원에서 열린 ‘경남전자출판포럼’에서 김보성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장이 한 말이 장맛비 처마 때리는 소리처럼 귓가를 친다. “경남은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런 (중요한 토론의)현장을 보러 온 공무원이 여기 어디에 있나?” 김 원장의 시니컬한 고언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제 지방자치단체가 경남의 성장 동력을 전자출판이라는 한 축에서 찾을 때가 됐다.

    허충호(논설위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허충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