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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그녀는 진짜 권투를 하고 있었다

  • 기사입력 : 2012-07-07 08: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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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탤런트 이시영이 홍다운(청색)과 여자부 48kg급 경기를 하고 있다.


    탤런트 이시영(30)이 지난해 3월 제7회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 48㎏급에서 우승했을 때 솔직히 긴가민가했다.

    이시영이 '이슈'를 만들기 위해 '하는 척'하는 것은 아닌지, 복싱계 차원에서 스타마케팅의 하나로 밀어주기를 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일말의 의구심도 있었다.

    지난해 4월 이시영과 영화 '위험한 상견례'를 계기로 인터뷰를 하면서 당연히 권투 얘기가 등장했다. 그때 이시영은 자신이 권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털어놓으면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진심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기까지는 이시영의 권투 열정이나 애정, 선수로서의 실력이나 위상에 관해서는 100% 확신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후 1년4개월여 동안 이시영의 복싱대회 참가 소식이 없길래 이제 그만 하는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정말 오랫만에 이시영이 복싱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 겸 전국체육대회 서울시 선발전이다. 마침 이번에는 경기 장소가 서울이기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러 이시영의 첫 경기가 있는 6일 낮 12시께 서울 오륜동 한국체대 오륜관으로 향했다.

    서울시대회인 만큼 소규모였지만 외국 기자들만 안 보일 뿐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의 취재 열기를 능가할 지경이었다. 오전 8시께부터 몰려든 사진기자 20여명, 영상기자 10여 명이 링 둘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시영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육관 안은 몹시 덥지는 않았으나 장마 탓에 공기는 습하고 끈적끈적했다. 경기장 안을 빙 둘러보니 다른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 코칭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몸을 풀고 있었지만 이시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시영은 이날 오전 6시 48㎏급 계체를 무난히 통과하고 대진 추첨을 한 뒤 어딘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탤런트 이시영이 홍다운과 여자부 48kg급 경기를 위해 링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 아마추어복싱연맹 신종관 실무부회장 겸 전무이사와 대화했다. 신 부회장은 "이시영은 신체조건도 훌륭하고, 기량도 빼어나지만 무엇보다도 복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크다"며 "이시영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뒤 복싱 인구가 10% 늘어났을 정도로 침체된 한국 복싱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보배"라고 높이 평가했다. 신 부회장은 이시영의 강점으로 큰 키(169㎝)와 빠른 움직임을 꼽았다.

    12시30분께 경기장 문이 열리고 이시영(잠실복싱)이 등장했다. 하얀 얼굴, 팔, 다리가 새빨간 유니폼과 헤드기어, 멋진 대비를 이루며 더욱 새하얗게 느껴졌다. 얼굴은 화장기 전혀 없이 민낯이었지만 여전히 예뻤다.

    마침내 이시영이 링 위에 섰다. 마우스피스를 낀 탓에 얼굴이 덜 예뻐보였디. 그런 상태에서 취재진의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지만 이시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매서운 눈빛이 마치 '오늘 나는 여배우가 아니라 복서, 아니 투사"라고 웅변하는 듯했다.

    이시영과 겨루는 상대는 명일여고 3년 홍다운(강동천호) 선수다. 홍다운의 신장은 150㎝로 키 차이는 무려 20㎝ 가까이 났다. 지난해 거둔 성적에다 신체 조건까지 더하니 이시영이 일견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홍 선수는 강한 훅이 주무기인 인파이터라 이시영으로서는 '한 방'을 조심해야 했다.

    공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총 4라운드, 각 2분씩이다. 이시영은 초반부터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해 홍다운을 괴롭혔다. 홍다운은 안으로 파고들려고 했지만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오히려 이시영은 홍다운의 공격을 오른손으로 막으면서 왼손 스트레이트를 홍다운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았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탤런트 이시영이 홍다운(청색)과 여자부 48kg급 경기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있다.


    1라운드가 끝난 뒤 링사이드로 돌아온 이시영은 가쁜 숨을 내쉬고 있긴 했지만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빨리 다음 라운드를 시작해 상대를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이고 싶은 눈치였다. 2, 3라운드에서도 이시영의 파상공세는 이어졌다. 간간히 홍다운의 반격도 있었지만 곧 진압됐다. 이시영은 홍다운의 얼굴에 왼손 스트레이트를 정확히 날리며 경기를 자기 페이스대로 이끌어갔다.

    마지막 4라운드는 이시영의 승리를 확정하는 시간이었다. 이시영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홍다운은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심판이 선수 보호차원에서 경기를 중단시키고 카운트를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RSC(TKO)로 이시영의 손을 들어줘도 무방하다. 하지만 4라운드가 얼마남지 않은 데다 홍다운이 계속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채 투지를 보인 점을 감안해 심판은 경기를 속행시켰다. 이시영으로서는 공격의 맥이 끊긴 상황이었지만 아쉬운 내색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노련하게 경기를 운영하며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 역시 지난해 전국대회 우승자다웠다.

    심판석 모니터의 점수판은 이미 19대 0으로 이시영의 완승을 사실상 확정짓고 있었다. 그리고 19가 20으로 바뀌는 순간 4라운드가 막을 내렸다.

    헤드기어를 벗은 이시영의 하얀 이마에는 빨간 헤드기어 자국이 나있었다. 문득 그 자국이 이 경기에 임하는 이시영의 마음가짐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머리는 2대 8가르마를 하고 한가운데는 고무줄로 묶어 왼쪽으로 넘겼다. 그나마도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헤어스타일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맨얼굴도 모자라 더벅머리까지…. 이시영이 작품 속에서 아무리 망가지는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저 정도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시영은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승리를 확신해서보다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성공리에 마쳤다는 흐뭇함 때문으로 느껴졌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탤런트 이시영이 강동천호 홍다운과 여자부 48kg급 경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심판이 두 선수를 링 한 가운데로 모았다, 그리고 이시영의 손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20대 0 이시영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이시영은 홍다운을 감싸 안으며 여성 복서라는 힘든 길을 걷는 후배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링에서 내려온 이시영은 벅찬 표정을 짓긴 했지만 바로 내일 결승을 떠올리는 듯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예고했던대로 기자들과 인터뷰를 결승전 뒤로 미루고 코칭스태프와 함께 경기장을 나섰다.

    경기를 지켜본 복싱계 인사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 KBS 복싱 해설위원은 "이 경기는 자기는 맞지 않으면서 상대를 일방적으로 때린 이시영의 퍼펙트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신인대회 때부터 이시영의 경기를 지켜봤는데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키가 크면서도 스피드가 있고, 스텝도 좋아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치켜세웠다.

    홍다운을 지도한 임창용 관장은 "이시영이 연예인인 점에 착안해 얼굴을 집중공격하면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복부가 열릴테니 그때 복부에 훅을 가하는 작전을 짰다. 그런데 아예 얼굴을 공격하지 못해 실패했다"면서 "신체 조건도 좋지만 정말 노력을 많이 해 그만한 기량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고 호평했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열린 서울시 복싱대표 선발전에서 탤런트 이시영이 홍다운(청색)과 여자부 48kg급 경기를 하고 있다.


    이시영과 맞섰던 홍다운도 "이시영 언니가 정말 잘하더라. 파고들어야 하는데 전혀 틈을 주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훈련해서 다음에 언니와 다시 만나면 꼭 이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서울시아마추어복싱연맹 김승미 부회장은 "이시영 선수가 빠른 스텝과 좋은 신장을 이용해 상대가 들어오는 것을 받아치면서 일방적으로 경기를 이끌었다"며 "굳이 약점을 꼽는다면 스트레이트가 나갈 때 몸의 자세가 조금 불안하다. 이럴 때 상대가 파고들어 공격하면 위험할 수 있다. 다행히 그런 기량을 갖추고 이시영을 잡을만한 선수가 아직 없는 만큼 이시영이 최대한 빨리 그런 약점을 보완한다면 앞으로 어떤 경기에도 승산이 있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현장에서 눈으로 지켜본 결과, 경기는 120% 리얼이었다. 이시영도 화제를 일으키기 위해 글러브를 끼는 것이 아니었고, 복싱계도 이시영의 활약이 복싱 활성화의 기폭제가 돼주고 있어 고마워하고는 있지만 모든 승부는 사각의 링 위에 맡겨놓고 있었다. 복싱연맹 고위인사들이 이시영을 따로 격려하는 모습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시영의 결승전 상대는 부전승으로 올라온 조혜준(올림픽체육관) 선수다. 뚜렷한 전적이 없는 베일 속의 주먹이긴 하지만 이시영보다 약체일 것이라는 것이 복싱연맹 관계자들의 일치된 예상이다. 결승전은 6일 정오께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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