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화- 이달균
- 기사입력 : 2012-07-1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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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영안실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
목발에 의지한 덧없고 창백한 도열
언제나 벽을 등진 채 배경이 되고 만다
관계를 맺지 못한 사자(死者)와의 시든 동행
한 번도 저를 위해 피고 지지 못했던
목 잘린 꽃들의 장례, 순장(殉葬)은 진행형이다
- 이달균 시집 <장롱의 말>에서
☞ 영안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이 부동자세로 선 근조화다. 고인을 위한 꽃의 장례인가, 도열한 꽃을 위한 산 자와의 이별인가.
기꺼운 마음으로 급히 달려온 저 꽃에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진다. 웃는 듯 우는 듯 꽃의 호흡이 들리는 듯하다. 꽃은 ‘관계를 맺지 못한 사자(死者)’에게, 사자(死者)는 꽃에게 영원한 타자(他者)다.
어차피 한 번의 생(生)이지 않나. 이 땅에 태어나 누구는 화려한 무대 위 조명을 받는 잔치에 선택되지만 ‘배경이 되는’ 삶 또한 그리 나쁘지 않으리.
죽음은 생의 종점이거늘 죽는 순간까지 선택받지 못하고 이슬처럼 사라지는 우리들 삶이다. ‘한 번도 저를 위해 피고 지지 못했던’ 그러나 마지막 순간 완성된 저 생의 종말. 김진희(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