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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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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자신만을 위해 충실히 산 죄- 이한영(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12-07-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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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장에 꽂혀 있던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새로 읽다가 실로 놀라운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전에 읽을 때는 지나쳐 버리고 말았던 시의 한 구절, ‘치욕도 명예도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충실히 살아온 자도 지옥에 떨어진다.’ 종교적 수사이긴 하지만, 세상에서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져 고통 받는 수많은 군상들 중에는 남에게 이익도 해로움도 끼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충실히 살아온 자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남에게 베풀지 않았으니 천국에 가기야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해악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지옥에 떨어진다는 게 충격적으로 느껴져 나는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만을 위한다는 게 무엇인가?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번 것은 내 것이니까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데 쓰는 것을 말할 것이다. 또 꼭 물질적인 게 아닐지라도 남의 일에 일절 상관하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이 잣대를 댄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신곡은 700여 년 전 중세에 씌어진 책이다. 당시는 인간이 아닌 신 중심의 세상이니 엄격한 교리에 입각한 종교적인 가치관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라고 해서 이 이야기가 전혀 엉뚱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이야말로 이 가치관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양극화의 골은 갈수록 깊어만 가고, 능력껏 살아가는 것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흔히 우리는 남을 돕지는 못할지라도 남에게 해악을 저지르지 않고 성실하게만 살면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라 인정해 준다. 살인, 강도, 사기, 절도, 폭행, 착취, 횡령 등등, 이 세상에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에 비하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법을 잘 지키며 사는 것만 해도 훌륭한 삶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사회,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한다면 나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고통과 안위에도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삶을 실천하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근래만 해도 감동적인 삶을 살다간 철가방 김우수 님, 김밥 팔아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김밥할머니, 함양의 염소할머니 등은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일깨워준 사람들이다. 내 살기도 힘든 우리 소시민으로서야 사실 이런 분들의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인들 따라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이웃을 전혀 외면하고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니,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관심을 보이는 것, 배려하는 마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힘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이제 우리 사회도 봉사라는 말이 보편화됐다. 여러 소외된 곳이나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진다는 것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빛이요 희망이다. 남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내 떡 내 먹고 네 떡 네 먹으며 나와 내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충실히 사는 삶이 죄가 된다는 논리에 수긍이 간다.

    물론 종교를 갖지도 않고 천국이나 지옥 등의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곳이 실제로 있다면, 죄를 지은 자야 응당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겠지만 자신만을 위해 충실히 살다 간 사람도 결코 좋은 대접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테를 인도해 지옥의 이곳저곳을 보여 주던 현자 베르길리우스는 탐욕의 죄악을 경계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웃과 나누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최선의 길이다.”

    이한영(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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