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주남저수지 지킴이 천염 조수보호반장

“날아가는 모습만 봐도 무슨 새인지 알지”

  • 기사입력 : 2012-07-17 01:00:00
  •   
  • 주남저수지 지킴이 천염 조수보호반장이 사진작가에게 여름철새인 개개비 출몰 지역을 설명하고 있다.
    천염 반장이 어린이 탐조객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생태, 우연히 만나다

    의용소방대원 활동하며

    조수보호반장 추천 받아

    조류도감 보며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생명의 생태 익혔지


    -철새, 내가 지킨다

    단속없던 시절엔

    엽총 사냥하던 사람들

    쫓아다니며 말렸지

    처음 일한 6개월 동안

    하루도 안빠지고 주남 지켜


    -생명, 소중함 깨닫다

    독극물 먹은 재두루미를

    살려낸 일이 가장 뿌듯

    좋아하는 아이들 보면 흐뭇

    철새 돌아올 겨울 기다려져



    람사르총회 이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 ‘주남저수지’. 수많은 사람과 새들이 오간 이곳을 28년째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이가 있다. 백발의 뿔테 안경.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천염(67) 반장이다. 공식직함은 ‘조수보호반장’. 사람들은 그냥 ‘철새반장’ 또는 ‘천 반장’이라고 부른다. 천 반장이 우연한 계기로 지난 84년 처음 조수보호반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28년이 흘렀다. 새에 대해 혹은 주남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을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철새반장 천 반장>

    창원군 시절이던 지난 1984년. 천염 반장은 개인사업을 하면서 의용소방대 활동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철새는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 그해 11월 1일 처음으로 조수보호반을 꾸리기로 했고, 의용소방대원 중에서 추천을 받았다.

    천 반장은 그렇게 일을 시작했다.

    “딱히 새를 좋아했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의용소방대 때 추천받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이리 다니고, 저리 다니고 단속도 하고 그게 좋더만. 그게 인연이 돼서….”

    30년 가까이 새들과 함께해 온 천 반장은 이제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들의 실루엣만 보고도 무슨 새인지 구분할 수 있고, 새 울음소리만 들어도 안다고 한다.

    한 번은 철새를 연구하러 온 박사와 함께 있을 때였다.

    “탐방객이 저 새가 무엇인지 묻기에 당연하다는 듯 홍무리오리라고 얘기해줬지. 옆에 있던 새 박사도 구분을 잘 못했지. 교수는 ‘천 반장이 나보다 낫네요~’ 하기에 ‘낫기는 뭐 나아요. 보는 대로 얘기하는거지’라고 했어”

    일부러 조류도감도 보고 새 연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 그렇게 주남을 찾는 모든 생명의 생태를 익혔다.

    시쳇말로 ‘완장’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청산가리, 덮치기, 엽총>

    철새도래지로 많이 알려진 주남저수지이지만, 과거에는 새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

    “60~70년대는 진짜 새들이 많았지. 가창오리만 20만~30만 마리가 왔는데. 새는 줄어들고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게지. 80년대까지만 해도 새 연구하는 박사들이나 중앙에서 오히려 많이 왔지. 일반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어. 옛날에는 새 구경이라는 게 있나?”

    지금은 람사르 문화관에서 탐조대를 지나는 길이 포장돼 있지만, 당시에는 비포장이었다고 한다. 더 정확히는 ‘농로’ 수준이었다. 걸핏하면 경운기가 빠질 정도로 다니기 불편한 곳이었다.

    1984년, 천 반장이 처음 일을 했을 때가 조수보호라는 개념이 시작된 시기였다. 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던 시절이었다.

    60~70년대만 해도 독극물(청산가리)이나 덫을 놓아 새를 잡기도 했고, 밀렵도 극성이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새 잡는 게 겨울철 큰 농사였네. 지게 지고 창원이나 진영장에 가서 팔았는데, ‘덮치기’라고 하는데 나락(볍씨)을 놓고 새들을 유인해 그물로 잡는 건데 한 번에 100마리도 잡았으니 이 동네에선 겨울철 큰 농사였지.”

    그때는 잡아도 이듬해가 되면 다시 많이 오니까 새를 잡는 데 죄책감도 없던 때였다. 가창오리만 해도 수십만 마리가 오던 시절이었으니.


    <겁없던 시절>

    “예전에는 미군들이 엽총을 가지고 사냥을 많이 왔어. 단속도 없었고, 마음대로 잡아먹었지. 일반인들 중에서도 돈 많은 사람들이 엽총을 가지고 사냥하러 오곤 했지.”

    그래도 용감한 ‘천 반장’은 오토바이를 타고 많이도 쫓아다녔다고 한다.

    지금이야 주 5일제 근무를 하지만, 처음 주남저수지를 지킬 때만 해도 휴일이 없었다.

    “처음 일할 무렵에는 6개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주남을 지켰지. 산불지킴이도 비가 오면 쉬지만, 우리는 쉬는 날이 없었어.”

    “잡으러 다닐 때 당시 오토바이 타고 순찰 다니고, 총 쏘는 것도 많이 잡으러 다녔는데 위험하기도 했고, 바쁘기도 했지. 워낙 무분별하게 잡으니 새 사체 처리한다고 고생 깨나 했네.”


    <자식 같은 새>

    80년대까지 엄청났던 철새들이 어느 핸가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

    천수만 생기기 전에는 가창오리의 주 도래지가 주남저수지였다고 한다. 주 서식지는 동판저수지.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두 해 동안 물이 메말랐는데 그 길로 천수만으로 가더니 오지 않았단다.

    “1985년인가 재두루미 한 마리가 독극물을 먹고 쓰러져있는 것을 데려왔지. 동물병원도 몰랐고, 나름 치료해서 미꾸라지 잡아서 먹이로 먹이고, 그 새가 나아서 마산 돝섬에 살고 있는 걸 보니 뿌듯하더라고.”

    최근에는 새를 잡기 위해 독극물을 놓는 일은 없지만, 대신 논에 뿌린 제초제를 먹고 죽은 미꾸라지를 다시 새들이 잡아먹고 중독사하는 일은 가끔 생긴단다.

    “지난 겨울에는 재두루미 4마리가 중독돼서 겨우 한 마리 살렸는데, 밤새 감쪽같이 사라졌더라고. 열흘 넘게 밥 주고, 약 먹이고 돌봐왔는데, 없어지니 집에 있던 애가 나간 것처럼 섭섭하더라.”

    주남저수지는 230여 종, 5만 마리가 넘는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곳이다. 수많은 새들 중에서 어떤 새를 좋아할까?

    그는 주저없이 ‘재두루미(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식물)’를 꼽았고, 가창오리도 애착이 많이 간다고 답했다.

    “겨울철 해질 무렵이 되면 가창오리가 군무를 합니다. 구름이 됐다가, 그물이 됐다가, 저녁 무렵 햇빛이 반사되면 정말 멋있지. 말할 수 없이 좋아.”


    <새들의 빈자리엔 사람이>

    겨울철에 철새가 많긴 하지만 여름에도 철새가 있다. 왜가리 등이 있고, 이미 텃새가 된 새들도 있다. 흰뺨검둥오리는 500마리 정도로 주남 근처에 산다고 한다.

    옛날에는 독수리가 주남저수지를 많이 찾았다고 한다.

    “흰꼬리수리는 사냥을 하지만 독수리란 놈은 죽은 시체만 먹으니. 요즘에는 독수리가 없어. 그만큼 죽는 새들이 없다는 거지. 좋아진 거야.”

    “주민들도 새 잡을 생각을 않고, 독극물 놓아 죽인 새가 몸에 안 좋다는 걸 아니 그렇게는 안 하지. 새들은 줄고 사람만 많아진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요즘엔 시민의식이 높아져서 쓰레기도 되가져가고, 일부러 새 쫓는 사람도 없어졌지요. 꼬맹이들이 새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요.”

    주남저수지를 찾는 관람객은 동절기의 경우 토요일에는 2000~3000명, 일요일에는 7000~8000명까지 온단다. 지금도 주말에는 500~600명이 이곳을 찾는다.


    <겨울을 기다리다>

    “가끔씩 그렇게 오래 일하면 지겹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습관이 돼서 지루한지도 모르겠어요. 요즘은 아이들도 많이 오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지겨운 줄을 모르지.”

    “여름에는 연(연꽃)이 좋지. 연은 지금이 한창이고 특히 아침 일찍 오면 좋으니 요즘 같은 날에는 아침에 차 댈 곳이 없을 정도라. 지금은 사계절 다 좋지요.”

    새와 주남이 좋아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주남저수지와 새를 사랑하는 천 반장.

    “사람이 많은 건 괜찮아요. 건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건 안타깝지만. 무엇보다 새들이 적게 오는 게 섭섭하죠. 그래도 올겨울에는 또 얼마나 돌아올지 기대감으로 사는 거지.”


    글=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사진=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차상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