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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⑦ 유홍준 시인이 찾은 '사천숲'

사천의 여름숲은 무성하고, 향기롭고, 육감적이다

  • 기사입력 : 2012-07-19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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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대곡숲.

     
     

    대곡숲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다리. 대곡마을 주민은 숲과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예수숲 내 수령 300년 된 고목이 만들어 낸 그늘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다.
     
    여름철이면 강에 물이 불어나 수청숲 그늘에서 사천강지류를 보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여름숲은 무성하고 향기롭다. 한 줄기 비가 씻고 지나간 숲은 더욱 그러하다. 여름숲은 육감적이다. 차라리 비릿한 살냄새가 난다. 여름비가 씻고 간 사천, 와룡산 저쪽에 햇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사천읍 외곽을 타고 고성으로 가는 33번 국도를 채 5분이나 달렸을까. 이내 정동면 대곡숲이 보인다. 정동초등학교 바로 옆이다. 대곡숲은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남해 물건리 숲, 하동 북천 직전마을 숲, 함양 상림 등이 모두 우수상을 받은 거에 비하면 대단한 결과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 숲은 1, 2등이 없다.

    마을 숲은 언제나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한다.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이 숲에 모여 회치(잔치)를 하고 회의를 하고 더위를 피하고 새참을 나눠먹는다. 그 옛날 하얀 한복 입은 사람들은 이 숲에서 장구를 치고 매구(小金)를 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 숲에서 연애를 하고, 통곡을 하고, 지쳐 눈물을 흘렸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대곡숲은 비보림(액운을 막고 가두는 숲)이다. 대곡은 마을 지세가 곡식을 까부는 키 모양이고 오랫동안 질병과 재난이 잇달아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한 그루 한 그루 건강한 소나무를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 보호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우리는 붉은 홍송이 어우러진 숲을 키득키득 장난을 치며 걷는다. 껍질이 툭툭 불거진 소나무 앞에 서로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다. 배병우 선생의 소나무 사진 이야기를 한다. 안개가 휘감고 도는 소나무 숲은 신령스럽고 신비롭다. 여름비가 지나간 소나무 숲을 정다운 사람과 함께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뾰족한 소나무 잎 사이에 머물러 있던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다. “이봐요, 후두둑 씨” 우리는 깔깔깔 낄낄낄 웃는다.

    여름숲은 가을숲이나 겨울숲과는 달라서 짐짓 무거울 필요가 없다. 자칫 처량하고 쓸쓸해 할 필요가 없다. 여름숲에선 바람 지나가는 소리 따위를 귀 기울일 필요조차도 없다. 한없이 밝고 풍성하고 행복해하면 그만이다. 연인과 손을 잡고 거닐어도 좋고 굵은 나무 등걸에 기대어 살짝 입맞춤을 해도 좋다. 여름숲은 너그럽다. 다 수용하고 빙그레 웃어 준다.

    우리는 대곡숲을 빠져나와 곧 수청숲을 만난다. 수청숲은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빗물에 불어난 사천강은 콸콸콸콸 흐른다. 언제 보아도 둑방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원하다. 보(洑)가 보이고 어로(魚路)가 보인다. 저 보 밑에서 물고기를 잡아 벌건 매운탕을 끓여 먹었으면 좋겠다. 수청숲은 벌건 매운탕을 끓여 먹고 낮잠을 자면 좋을 것 같은 숲이다. 대곡숲 건너편에 있다. 수청숲은 활엽수 고목으로 이루어진 숲이다. 요즘은 둑을 따라 자전거길이 잘 닦여져 있어서 사천읍에서 자전거를 타고 고고 씽~ 시원하게 달려갈 수도 있다.

    수청숲이 있는 수청마을은 자부심이 대단한 동네다. 옛날엔 성인촌(聖人村, 聖子洞) 혹은 성재동(聖齋洞)이라고도 불렀다. 수청마을 뒷산이 이구산(尼丘山)인데 공자와 관계가 있다. 공자의 고향 중국 산동성의 곡부현(曲阜縣) 동남쪽에 있는 산이 이산(尼山)이고 공자의 자호(字號)가 구(丘)이기 때문이다. 사천이란 지명도 그렇다.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에는 두 갈래의 강이 흐르는데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다. 사천(泗川)이란 지명도 결국 공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닌가?

    숲 건너 둑길에 자전거 탄 몇 사람이 지나간다. 우리도 가을쯤 저 자전거를 타고 둑길을 달려와 보자고 약속을 한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또 지나간다. “어이, 후두둑 씨!” 우리는 또 낄낄낄 킥킥킥 웃는다.

    다음은 예수숲이다. 예수? ‘예수’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는 잠시 갸우뚱한다. 예수리는 예촌(禮村) 혹은 예수정(禮樹停)이라고 불렸다 한다. <사천읍지>에 의하면 ‘이구산 밑에 성인동과 성재동이 있으며 동 중에 단이 있고 예촌, 예수정, 강당촌 등은 동 외에 있으니’라고 했다. 그러니 다 공자(?)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예수숲의 또 다른 이름은 ‘오인숲’이다. 구한말인 1901년 일제의 침략 야욕이 극에 달하자 이를 걱정한 사천군수가 인근 진주, 곤양, 단성, 고성 등 4개 군의 관장을 초청하여 각기 지니고 온 인(印)을 이 숲속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수령으로서의 당면과제를 걱정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수숲은 느티나무 팽나무 냇버들 등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쉬운 건 이제 남은 나무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옛 명성이 아쉬운 숲이다. 옛사람들은 마을 앞에 숲을 일구어 허한 풍수의 결함을 보했는데 주거환경이나 주택구조나 세상살이가 바뀌면서 그런 것들이 다 무용해진 탓이다. 예수숲은 바로 사천읍 건너에 있다.

    우리는 예수숲 앞에서 잠시 티격태격한다. 사천읍으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아니다, 구암 이정(1912~1971)의 구계서원엘 가 보자. 아니다, 어차피 숲을 보러 나선 거 사남면 능화숲엘 가 보자. 우리는 길옆 슈퍼에서 빵과 우유와 과자부스러기를 사고 씽~ 능화숲으로 간다. 능화숲은 사천읍에서 삼천포로 가는 구(舊) 길을 타고 가다가 사남면 조금 못미처 좌회전, 구룡저수지 끝나는 지점에 있다. 거기가 바로 능화숲이다.

    사실 물놀이를 즐기기엔 능화숲이 최고다. 물이 맑고 숲속 족구장도 있다. 얼굴 하나도 안 타고 여름에 족구를 즐길 수 있는 곳, 그게 능화숲이다. 울창한 활엽교목들로 이루어진 능화숲 앞엔 맑디 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그런데 돈을 받는다. 텐트를 쳐도 돈을 받고 평상을 써도 돈을 받는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피서지로서는 적격이란 말이다. 사실 숲의 순기능은 저런 것일지도 모른다. 유료만 아니라면.

    그렇거나 말거나, 시퍼런 개울물을 빨아먹고 여름숲은 한층 더 푸러져 간다. 나무처럼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본다. 물에 담근 발은 뽀얗고 예쁘다. 씻어주고 싶다. 오늘 하루 멋지고 행복하게, 근심걱정 하나도 없이 보내면 그게 최고다. 그게 삶의 숲을 이루는 거고 나무처럼 멋지게 사는 거다. 낄낄낄 깔깔깔.

    /글·사진=유홍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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