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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태 四柱 이야기] 처세술

  • 기사입력 : 2012-07-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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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중화TV에서는 주원장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다. 그런데 그 중 상당 부분이 유백온에 할애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는 백온(伯溫), 이름은 기(基), 유기 혹은 유백온으로 불린 사람으로 중국 원말~명초의 인물이다.

    역사에 위대한 제왕이 있으면 그 옆에는 제왕을 보필한 뛰어난 책사가 있기 마련이다. 황제로 명(明)을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에게는 유백온이라는 걸출한 책사가 있었다.

    중국 야사에서 제일가는 지혜로운 군사(軍師)를 꼽으라면 제갈량과 더불어 앞으로 500년을 본다는 유백온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출중한 능력은 다음과 같은 세간의 평가가 말해 준다.

    “천하를 세 등분한 것은 제갈량이요, 강산을 하나로 통일한 것은 유백온이다.”

    주원장도 유백온을 평가하면서 ‘나의 자방’이라고 불렀을 만큼 최고의 책사였다. 그는 장강 삼각주 남쪽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 절강성의 여수시 청전현에서 태어나 원의 벼슬을 하다가 낙향해 은거 중 주원장의 거듭된 요청에 응하여 그의 책사가 된 인물이다.

    홍무제 주원장이 남경성(南京城)을 쌓고 유백온에게 “성이 함락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유백온은 “제비(燕)만이 날아들어올 수 있다”고 대답했다. 주원장은 그 말을 듣고 남경을 금성철벽으로 간주했으나, 수십년이 지나 연왕(燕王) 주체가 남경으로 쳐들어와 조카 건문 황제를 몰아냈다. 그제야 사람들은 유백온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연나라의 이름이 제비 연(燕)자를 쓰지 않는가.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백온이라고 하면 처세술의 대가라고 한다. 주원장이 왕권강화를 위해 수많은 신하들을 도륙하는 가운데서도 처세술 하나로 말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유백온이 더욱 유명한 것은 명리학 서적인 천기를 누설한다는 뜻을 지닌 ‘적천수’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원저자가 유백온인가 하는 것에는 많은 이견이 있으나 ‘적천수’에 처음 주석을 단 것은 분명하며 경서와 술수 분야의 대가였다는 것도 분명하다. 명리를 연구하고 별자리를 관찰하여 주인과 자신의 운명을 감별하였으니 처세술의 근원이 명리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 속의 인물이지만 이런 인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요즘의 시국과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만사형통’으로 통했던 절대권력도, ‘개국공신’이었던 국회의원도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 그들은 처세가 나빴기 때문일 터이다. 세월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아무리 강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권력도, 재력도 세월이 가고 철이 지나면 기울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이런 단순한 이치를 그들만 모를까.

    유백온이 길을 걷다가 땅에 침을 뱉었다. 이때 길 옆에 있던 비석에는 ‘유백온이 이곳에서 침을 뱉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제갈량의 낙관이 있었다. 깜짝 놀란 유백온이 계속 길을 걷다 보니 제갈량의 묘지가 있었다. 묘지를 열고 안에 들어가니 관 한 채와 호롱불 한 개가 놓여 있었고, 호롱불 옆에 있던 쪽지 한 장에는 ‘유씨, 호롱에 기름 더해줘’라고 적혀 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명리의 대가로 하늘의 뜻을 안다는 유백온도 1000여 년을 내다보는 제갈량에게는 두 손을 들었을 것이다. 처세는 겸손에서 나온다. 잘나간다고 거들먹거릴 필요 없다.

    역학 연구가

    정연태이름연구소 www.jname.kr (☏ 263-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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