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날리다 -잠자리 - 이처기(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2-07-2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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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듯 가벼이 저 멀리 떠난다
투명하게 헹군 자락 고요히 유영하는
훨 훠훨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이
쟁여 있는 얼룩을 찾아 균형 잡은 은빛 날개
잠자리 날개 망 사이로 우주가 잠겨 간다
덧없이 이어져가는
무상한 생애를 업고
수많은 망과 망 사이 하늘하늘 떠가면서
출렁이는 꿈도 꾸며 물구나무도 서 가면서
기우뚱
기우뚱거리며
차오르며 뜨는 날개
- <2011 가락문학>에서
☞ 키보다 훌쩍 더 큰 채를 들고 살며시 다가가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잠자리, 빈 손이 무안하다. 허방을 짚고 놓친 게 어디 잠자리뿐이랴. ‘잠자리 날개 망 사이로 잠긴 우주’는 또 얼마나 가없는가? 망망한 하늘 아래 ‘출렁이는 꿈도 꾸며 물구나무도 서가면서’ 기우뚱 날갯짓하며 차오른다. 존재의 날갯짓은 저렇게 고단한 긴 삶의 여정이다. 훨훨 빈 몸 털며 가벼이 날고 있다. 담장 너머 잠자리가 날아온다. 맑고 투명하고 가난한. 김진희(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