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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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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작은 집이 세상을 품고- 박종순(아동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2-07-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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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섯 평 작은 집을 생각한다. 주인 닮아서 바보처럼 서 있는 작은 집. 책 말고는 별다른 짐도 없지만 두 명이 누우면 비좁은, 세 명이 마주 앉으면 무릎이 닿을 그 방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 넓게 보시고, 세계 가난한 어린이들 다 챙기셨던 그 주인 닮아 넉넉한 품을 가진 집, 그 집에 올해도 다녀왔다. 해가 갈수록 마당의 풀들이 줄어들고 반들반들한 땅이 넓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지만, 어린이들의 발자국이 만든 땅이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늘 양지보다 음지를 향하고 있었고, 부자보다 가난한 이들을 보듬고 약자 편에 서서 이야기하려 했던 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살던 집. 그이가 유언했던 것처럼 지금 그 작은 집은 조금씩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죄를 덜 짓기 위해 덜 먹고 덜 싸는 일도 소중히 여기셨던 그 마음을 어린이들과 공유하려 했으며, 아무리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강아지 똥이 민들레꽃을 피우는 것처럼 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으며 작은 것일수록 소중하다는 진리를 어린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그 작은 집이 푸른 햇살 아래 더욱 넓어 보였다.

    신문을 펼치면 이 사람 저 사람 여기 저기 나서서 이 나라를 살릴 사람은 자신이라고 큰소리로 떠드는데, 또 한편에서는 그들 언저리에서 온갖 도둑질과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이 거액의 돈을 받아써서 구속되는가 하면 측근 역시 비리에 연루돼 정권의 부도덕성을 보여주는 세상이다. 남들이 저축해놓은 돈도 권력을 남용하여 자기 돈처럼 가지고, 공기업은 인사 파행으로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니,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한 서민은 힘이 빠진다.

    맹자 양혜왕 상 4장에 보면 맹자가 양혜왕에게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 칼로 죽이는 것과 악정(惡政)으로 죽이는 것이 다른지 묻는다. 다른 점이 없다고 하자 이어서 맹자가 한 말이 있다. “솔수이식인야(率獸而食人也).” 임금의 주방에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얼굴빛이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널려 있다면 이것은 ‘짐승들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왕이 정치로 백성을 죽인다는 사실을 엄중히 경고하였으며, 백성의 어버이인 군주가 짐승을 몰아 백성을 잡아먹으니 참다운 도리를 못한다는 꾸지람을 한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 역시 위정자들이 서민을 살리기는커녕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해도 될 만한 세상이니, 한 번쯤 맹자의 일침을 새겨볼 일이다.

    예전에는 가난을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가난은 곧 불행이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다. 인간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돈이나 권력이 앞에 서서 사람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가 이제 어린이에게 그대로 심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아 다시 권정생 문학을, 그의 삶을 새긴다.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독한 병마에도 견뎌내고, 그리운 가슴도 다 안고 살아갈 수 있었던 작가. 그 고통의 크기만큼 희망의 상상력을 담은 많은 동화, 동시들을 어린이에게 남기고, 그는 어린이 곁에 영원히 살고 있다. 정치권이 아니라 권정생의 동화에서 이 시대의 희망을 찾아야 할 이유다.

    작은 집에서 세상을 다 품고 살았던 큰 부자. 자연의 이치를 닮아 그렇게 살려고 했던 그 마음은 크고 아름다웠다. 인세 받아 모아둔 돈 모두를 세계의 가난하고 굶주린 어린이에게 남기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소통하는 세상을 염원하였던 작가. 그래서 권정생의 동화를 읽으면, 힘들게 살아가지만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어린이가 더욱 당당히 세상과 마주하고 서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고 선생이 밝혔듯이 그의 글들은 철저하게 슬픔과 아픔을 관통하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지만 그 속에 절망을 심지 않았다.

    몸보다 마음이 더운 올여름, 권정생의 동화를 함께 읽으며 이 세상을 이기고 살려나갈 진실을 찾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공통된 바람이 되어 현실화되는, 그 정신의 회복이 간절하다.

    박종순(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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