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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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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하동 원각사 원성 스님

학승들 공부하는 선원에 선차(禪茶) 공양…
코는 풀내음을 맡고 눈은 색깔에 반하고 입은 뒷맛에 반응한다

  • 기사입력 : 2012-07-3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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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성 스님이 발효 중인 선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원성 스님이 분쇄작업 전에 녹차 잎을 손질하고 있다.
    원성 스님이 선차를 찻잔에 따르고 있다.




    “코는 풀내음을 맡고, 눈은 노오란 색깔에 반하고, 입은 감초가 빚는 뒷맛에 반응한다. 귀는 기뻐서 열리고, 온몸의 촉수는 감사함에 들뜬다.”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 양산 통도사 등 학승들이 공부하고 있는 선원에 선차(禪茶)를 공양하고 있는 하동 원각사 원성 스님이 지난 27일 손수 내놓은 정성에 나의 오감이 쉴 새 없이 ‘나’를 비집고 나왔다.

    모양은 중국의 보이차를 빼닮아 한국형 보이차라고 할 수 있는 떡차. 그러나 녹차에 한약재를 넣어 선차라는 이름으로 선원에 공양하고 남는 것은 시중에 내다 팔기도 한단다.

    원성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특이한 차만큼이나 낯설고 힘들었다.

    원각사라는 사찰 명칭이나 표시도 없다. 내비게이션에도 없다.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개치마을에서 겨우 차 한 대 지나갈 꼬불꼬불한 산길을 1㎞ 남짓 가서야 ‘현장’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입구까지 마중을 나온 친절함, 차를 내놓는 정성은 낯섦을 제하고 남을 겸손과 겸양이라는 덤을 나에게 줬다.

    “차와 선은 둘이 아닌 하나”라면서 “국내 차 문화를 주도해 온 이들은 사찰의 스님이었다”고 말을 시작했다.

    정갈한 다기에 차를 내놓았다.

    한지에 싸인 선차를 꺼내 작은 덩어리를 다기에 넣는다.

    결코 서툴지도, 그렇다고 매끄러운 자세도 아니다. 그렇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외딴 데 사는, 스님의 태도론 제격이다.

    묻지 않았는데도 “세수 60에 법랍 30”이라면서 기자의 궁금증을 먼저 풀어준다.

    사찰 표시가 없는 것에 대해 “지난 6월 16일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작은 암자가 불에 타고 말았다”면서 작업장 근처의 터가 다져진 땅을 가리켰다.

    큰 바위들로 옹벽을 쌓은 터가 한눈에도 대규모 불사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 만드는 법을 물었다.

    원성 스님은 “곡우니 우전이니 하는 계절에 상관없이 녹차를 4월에 한꺼번에 채취하여 분쇄작업을 한다”면서 “여기에 정향, 곽향, 계피, 생강, 감초 등 각종 한약재를 넣고 잘 섞고 초파일 전후로 저온창고에 한 달 정도 숙성시킨 뒤 1개 15~20g 정도로 뭉쳐 건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가루를 내는 것은 떡차와 같다”면서 “내용물이 떡차와 다르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는 “지름 3㎝, 무게 15g 정도 크기로 손으로 다져 만든 것을 건조 후 18개월 동안 숨을 쉬는 장독에서 숙성시킨 뒤 선원에 공양을 하거나 시중에 판매하기 전에 약한 불에 40분간 덖는 마무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원성 스님은 “학문적으로 검증을 받지 않아 모르겠지만 전국에서 선차는 내가 유일할 것”이라면서 “특허도 내놨다”고 덧붙였다.

    “백양사에 있던 한 스님이 선차를 이어오다 맥이 끊겼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떤 처사도 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면서 “여하튼 8년 전에 내가 시도했고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경주 불국사, 문경 봉암사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선원에 조금씩 보내는데 학승으로부터 감사 편지도 오는 등 반응이 좋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건조시키는 것이었다”면서 “자연상태에서 건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말했다.

    “실패 기간이 4~5년 남짓 됐다”면서 “다 마른 것 같았지만 습도 등이 조절 안돼 내부에 곰팡이가 생기기도 하는 등 실패의 연속이었다. 건조기를 도입해서 40℃ 정도에서 3~4일 말리면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웃었다.

    녹차는 어디서 수확하느냐고 묻자 화개면과 악양면 등의 산에 2만㎡ 정도 키운다고 했다.

    설명을 들은 뒤 다시 보니 한지에 쌓인 ‘자식’과 같은 선차들이 방긋방긋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름은 3㎝ 남짓에 두께는 1㎝, 무게는 15g 정도란다.

    한 개로 20명 넘게 마실 수 있단다.

    차를 내려고 하자 원성 스님은 “8분의 1 크기로 3~4명이 마실 수 있다”면서 “귀한 음식 버리지 않도록 천천히 맘껏 드시라”고 말했다.

    차로 만난 특별한 인연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전남 여수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빈속에 먹어도 속이 쓰리지 않아 좋다는 말과 함께 8년째 차를 애용한다”고 했다.

    원성 스님은 또 “비구니 노스님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스님들이 참선하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에 도움이 되고 변비 예방, 소화 촉진, 비장을 다스리는 데 괜찮다는 말들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혹시 학문적인 검증을 받았느냐고 따지듯 묻자 순천대 박종철 교수를 거론했다.

    원성 스님은 “박 교수가 ‘DPPH 라디칼 소거활성측정법으로 실험한 결과, 약한 불로 마무리를 한 차가 그렇지 않은 차보다 항산화 효능이 강했으며 일반적으로 약한 불로 마무리한 차와 그렇지 않은 차 모두 강력한 항산화효능을 나타냈다’고 하는 보고서를 냈다”면서 얇은 책자를 내밀었다.

    짧지만 강한 만남과 배움을 뒤로한 채 일어서려고 찻잔을 들어 마시려는 순간, 노오란 색깔 뒤로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차 상대도 적어야만 한다. 즉 ‘차를 마시는 손님이 적은 것이 중요하다. 손님이 많으면 소란스러워지고, 소란스러워지면 차의 고상한 매력이 사라져 버린다. 혼자서 차를 마시면 속세를 떠났다 이르고(이속), 둘이서 마시면 한적이라 이르고, 서너 명이 마시면 유쾌라 이르고, 대여섯이 마시면 저속하다 이르고, 예닐곱이 마시면 비꼬는 말로서 박애라 이른다.”

    오늘 산사에서 마신 차는 적어도 3명을 넘지 않았으니 소위 ‘임어당 룰’은 지킨 것이 아닌가 생각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산사를 나서는 내 그림자 뒤로 한낮의 해가 긴 그림자를 섬진강에 걸친 채 가쁜 숨을 내쉬면서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7월 오후의 그 붉디 붉은 해가 백자 다기에 담긴 계란 노른자 같은 선차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글=이병문 기자 bmw@knnews.co.kr 사진=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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