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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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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웃기는 사람, 우아한 사람 - 백남오 (수필가·서정시학회장)

  • 기사입력 : 2012-08-0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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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성격이 가장 많을까.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 나의 문학수업 시간에 ‘한국문학의 특질’이란 단원을 공부하면서 학생들과 큰 발견이나 한 듯이 환호하고 힘주어 강조하는 이론이 있다.

    조동일 교수의 ‘한국문학의 미적 범주’인데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성격을 대비시켜 보면 아주 재미있다. 한국인은 웃기는 사람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우아한 사람, 숭고한 사람, 비장한 사람의 순서로 나타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웃긴다고 할 때 어떠한 것이 웃기는 것인가.

    우아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우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수밖에 없고, 왜 그러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하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다. ‘숭고’하다는 것은 ‘이상’과 ‘현실’이 결합된 상태인데 특히 이상 중심으로 이뤄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치고 자기의 이상을 완전히 실현시킨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숭고의 배경에는 반드시 종교와 철학이 관련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문학에는 신화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우아’는 숭고와 마찬가지로 ‘이상’과 ‘현실’이 결합되면서도, 다만 현실 중심으로 ‘융합’된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자기가 바라는 그것이 있는 상태, 말하자면 일종의 체념적 현실만족인 셈이다. 우아는 동양적 미의식의 바탕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문학에는 우아한 것이 많고 한국인은 우아한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려속요, 민담 등 외계의 삶에 만족하는 평민의 문학에서 우아는 더욱 폭넓게 나타난다. 비록 양반 등 힘 있는 자가 괴롭힐지라도 그에 대항하지 않고 그 자체의 소박한 삶의 의지로 삭이고 가꾸어 가는 것이다.

    ‘비장’은 ‘이상’과 ‘현실’이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반’된다.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세계에 계속 집착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젊은 지성들이나 정의를 위한 투사들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투쟁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치는 일도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비장의 극치다.

    희극의 원리이기도 한 ‘골계’ 역시 ‘이상’과 ‘현실’이 ‘상반’되는데, 이상을 부정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현실이 아무리 잘못되어도 그것을 인정하며, 바라는 모범과 꿈꾸는 이상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웃기는 것이며 골계의 본질이다. 잘못된 현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수긍해야 한다는 인간적인 고뇌가 있을 테지만, 잡초처럼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논리 앞에서 개인의 꿈과 이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바로 웃음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우리 문학은 비장이 적은 대신 골계가 풍부하다. 그래서 해학이 많다. 마땅히 해야 할 인간의 도리를 외면하는 자일수록 더 위선적이고 점잖은 척한다. 바로 이런 자들을 놀리고 징벌할 때 풍자와 해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 문학의 그 어느 분야에서도 골계는 다양하고 풍부하다. 해학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긍정적이고 삶의 의욕이 강하다는 논리로 위로받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어느 시대 사람 치고 삶의 논리 앞에 웃기지 않을 자, 누구이겠는가. 지금 우리의 가장들은 어느 하늘 밑, 누구 앞에서 웃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웃기는 사람인가. 우아한 사람인가. 숭고한 사람인가. 비장한 사람인가. 아니면 여기서는 웃기고, 저기서는 우아하고, 거기서는 비장한 척하는 사람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삶이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남오 수필가·서정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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