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합기도 공인 9단 윤상고 비연(飛鳶)합기도총본관장

"합기도 배우려 외국인들이 창녕 찾아올 때 뿌듯"
학창시절 멀리뛰기 선수로 활약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다쳐 중단

  • 기사입력 : 2012-08-07 01:00:00
  •   
  • 윤상고 비연합기도총본관장이 대련시범을 보이고 있다.
    윤상고 총본관장이 팔 꺾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무인은 무술을 통해 인내와 극기를 배우며 자아를 성찰하고 외유내강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덕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무술의 근본입니다.”

    윤상고(65) 비연합기도총본관장은 창녕군 영산면에 위치한 자신의 도장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며, 무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합기도 공인 9단으로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수이다.

    합기도에 입문한 지는 올해로 42년째이며, 최고 고수 반열에 오른 것은 입문 30년 만인 1999년도이다. 윤 관장은 영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지 올해로 40년째를 맞았고, 그를 거쳐간 제자만도 2000명이 넘는다.

    지금도 유치원·초등생 등 손자뻘 제자들을 가르치며 합기도 보급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독일과 스페인 등에서도 수차례 세미나를 열며 한국무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비연(飛鳶)합기도’라는 것은 그가 만든 고유 브랜드이다.


    ◆60대 나이에도 휙휙

    잠깐 무술 시범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서슴없이 부채를 하나 들고 나왔다. 부채형 동작이라고 하는데, 부채를 펴고 접을 때마다 휙 휙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무협영화를 볼 때의 그 느낌이다. 기합 넣는 소리도 우렁차다. 다음은 검을 가지고 나왔다. 유연하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다음은 대련 시범이다.

    “상대방이 공격할 때는 힘을 뺀 채로 방어를 하고, 공격할 때는 단전에 힘을 모아 던지기나 꺾기 등의 기술을 펼칩니다.”

    합기도는 선제 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다른 무술들과 달리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방어적인 무예로 인체의 근육과 관절, 경락 등에 대한 이해가 높아 작은 힘으로도 상대의 거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한다.

    대련자가 그의 손목을 두 손으로 힘껏 잡았는데도, 웃으면서 쉽게 빠져나오는 것도 기 수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60대 중반 나이에 166m의 키, 60kg도 채 나가지 않지만 꺾기나 평수법(平手法)으로 상대방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평수법은 일종의 장풍(掌風)으로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급소나 혈을 타격하는 것인데 그저 피가 나거나 찢어지는 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통증을 느끼게 하는 깊이가 있어 치명적이다.

    윤 관장은 “합기도는 강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슬기롭게 제압할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체계화시킨 무술로 조상들이 남겨주신 훌륭한 문화유산이다”고 강조했다.


    ◆오토바이 사고, 합기도 입문 계기

    윤 관장이 합기도를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뜻하지 않았던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후 재활치료를 위해서였다.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재활치료 등을 위해 합기도를 배우게 됐고 이것이 계기가 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학창시절 마산상고(현 용마고), 동아대학교 멀리뛰기 육상선수였던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육상선수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그는 체구가 왜소해 고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고, 2단까지 받았다. 그는 옛 마산 중앙극장 근처에서 국술원 경남본관을 운영하고 있는 변세기 선생을 만나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육상과 태권도 등으로 다져진 몸이라 빠르고 유능해 스승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특별지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국술원 본관 도장의 일부분을 천으로 가리고 개인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또 하루 발차기를 1000개 넘게 할 정도로 이를 깨물고 훈련을 했다.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게 됐고, 입문 3년 만에 ‘하산’을 할 수 있게 됐다. 고향인 창녕 영산에 자신만의 도장을 개설하게 된 것이다.


    ◆20대 후반에 비연관 열어

    그는 20대 후반인 1972년도에 영산에 국술원 비연관 도장을 열고 40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도장을 거쳐간 제자들은 약 2000명으로 지난 4월에는 40주년 기념행사가 영산초등학교에서 성대하게 열렸다고 한다. 영산에 도장을 처음 개설할 때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중고등학생들이었다. 월 평균 100명 이상씩 관원이 몰려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는 “지역에서 합기도 도장을 처음 연 데다 주로 꺾기, 던지기, 혈도 누르기 등의 호신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그 당시에 운동을 한 제자들의 모임이 지금도 이어질 만큼 끈끈한 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방학 때는 제자들을 경운기에 태우고 근처 산과 들을 누비면서 합숙을 하며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또 마을에 들러 주민들에게 무술 시범을 보이면서 합기도를 홍보하기도 했다.

    무술 시범을 보이던 중 타 무술 고수의 대련 제의가 들어온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당시 저에게 제의가 들어왔지만 저의 제자가 나서 ‘나를 이기면 스승과 대련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저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모든 단원들과 대련을 해줄 만큼 열성적이었다. 한 사람당 2분씩 대련을 하다 보면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슬땀을 흘리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렇게까지 할 수 없지만 어린 제자들이 시범을 보여달라는 요청이 많아 수련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한다.


    ◆해외로 해외로 합기도 개척

    그는 합기도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독일, 스페인,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윤 관장의 도장을 직접 찾아 한 수 지도를 받기도 하고, 윤 관장이 직접 해외로 나가 지도를 하기도 한다.

    지난 2000년도에 독일 하노버 세계무술협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본격적으로 해외개척을 시작했다. 2003년도에 독일 세미나에서 무술 시범을 보여 기립박수를 받는 등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08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한국무술이 최고라는 찬사도 받았다.

    하지만 무술 시범을 보일 때 당황한 상황을 맞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2m 키에 130kg의 거구가 손목을 잡으면서 빠져 나가보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양에서 온 왜소한 체구의 무술인이 신기하기도 하고,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이런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그는 그럴 때마다 실력을 보이기보다는 “내가 너희들한테 온 것은 강하기 때문이 아니고 먼저 무술을 했기 때문에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다”고 설명하며 손목을 가볍게 빼서 옆구리 쪽에 평수를 살짝 쳐주면서 빠져 나온다고 한다. 실력대로 하다가는 자칫 일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독일, 스페인, 멕시코 등에서 비연도장을 열었으며, 앞으로 일본과 미국에서도 해외도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지인인 이형규((주)사임당화장품 대표)씨의 지원을 받아 (사)고려합기도협회를 만들어 영산에서 세계무술대회를 2번이나 개최했다.


    ◆가족 넷 합치면 70단 넘어

    윤 관장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합기도와 태권도, 공수도, 검도 유단자고 막내딸도 합기도 유단자다. 윤 관장의 가족 4명이 따낸 단증만도 무려 70단이 족히 넘는다.

    윤 관장은 태권도 2단, 합기도 9단이며, 이곳 제자 중 맏아들 진현(38·남지읍 비연합기도 관장) 씨는 합기도 7단, 태권도 5단, 공수도 4단, 택견 4단, 해동검도 4단, 국제태권도연맹 태권도 4단, 러시아 쌈보 4단 등 모두 32단이다.

    둘째 아들 순현(35·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 비연합기도 관장) 씨도 합기도 7단, 태권도 5단, 공수도 4단, 국제태권도연맹 태권도 4단, 러시아 쌈보 4단 등 모두 24단이며, 막내딸 선영(32·마산회원구 내서읍 호계리 비연합기도 관장) 씨도 합기도 6단으로 가족 4명의 단을 모두 합치면 74단이다.

    그는 “가족들이 함께 해외에 나가 한국 무술을 알리면서 큰 호응을 받을 때 보람을 느끼며, 특히 외국인들이 비연관 명성을 듣고 무술을 배우고자 시골까지 찾아올 때 정말 무술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글=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사진= 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종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