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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74) 황강 22 합천군 야로면~가야산 해인사 암자

대가야 역사 만나고 천년소리길 걷다 보니 더위 가시더라

  • 기사입력 : 2012-08-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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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수암 마당에서 스님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약수암 전각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깨끗한 사찰이어서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해인사 소리길.
    벽암 각성대사가 중건한 국일암.
    보찬과 지종스님이 중건한 삼선암.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달력을 보니 찌는 듯 한 무더위 속에서도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입추이다. 여름에 날씨가 맑고 햇볕이 따가우면 덥기는 하지만 들판에 농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 풍년을 기약한다. 입추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15일씩 과학적으로 나눈 24절기 중 하나이고, 말복은 풍습과 세태를 반영한 이른바 속절이다. 올해 말복은 입추와 같은 날이다. 광해군 6년 이수광이 펴낸‘지봉유설’에 따르면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하였다. 즉 여름 더위를 꺾는 날이다. ‘삼복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복더위를 극복하는 방법이라 했다. 그러나 휴식을 취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늘 우리 땅을 순례를 하며 자연과 문화유산을 찾아 교감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남다른 휴식을 얻는다.


    <월광사터 동서삼층석탑·홍류동천>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을 하면서 해인사 가는 길은 고속도로 나들목에서부터 주행사장이 있는 가야면까지는 도로 공사가 말끔하게 완공됐다.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주)장수촌 건너편 월광 이천길을 따라 가야천 월광교를 건너면 보물 제129호 월광사터 동서삼층석탑 2기가 다소곳이 반겨준다.

    늘 해인사로 가는 길에 지나쳐 가곤 했다. 따가운 여름 햇볕이 내리쬐던 날 찾았더니 탑 주변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쌍탑 중간에 묘지도 있었다. 탑 주변에 있는 소나무들은 세월을 버티고 있는 쌍탑의 수문장처럼 보였다. 월광사의 내력은 멀리 가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가야는 562년 멸망했다. 삼국사기 제4 진흥왕 23년 조에 의하면 왕이 이사부에게 명하여 토벌토록 했는데 사다함은 50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성안으로 들어가니 일시에 모두 항복했다고 했다.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 혹은 태자로 전해진다. 그는 신라에 저항해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는데, 최후의 싸움터가 이곳 월광사터이며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 월광사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월광사는 비운의 월광태자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흔적이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없고 2기의 석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 절이 부근에 들어서 있었다.

    여름 꽃들이 피어 있는 절집으로 들어서니 대웅전만 절집 양식을 따르고 있고 옆에 있는 건물은 일반 기와집인데 기둥이 4각형인 것으로 봐서 다른 곳에 있던 건물을 이전해 온 것으로 보였다. 탑 옆 공터에는 작자 미상의 시비가 있고 마을사람들의 계모임 비석도 빈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허전한 절터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쌍탑이 월광사지 옛터를 지키고 있어 다행이었다. 통일신라시대 쌍탑이라면 전혀 양식을 달리하거나 경주 감은사지 쌍탑처럼 두 탑을 똑같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월광사터의 두 탑은 신라시대의 방형 삼층석탑으로 크기나 양식이 같아 공통적이면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어 매우 흥미롭다.

    특히 기단부가 서로 대조적이다. 동탑은 전체의 규모에 비해 기단부에 다소 많은 돌을 사용하였고, 서탑은 쓰러져 부서진 것을 복원하여 파손된 흔적이 있다. 또한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도 기둥모양을 본떠 새겨놓았는데 서탑은 2개이고, 동탑은 1개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이나 서로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각 부분의 구성 방법이나 양식이 약간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월광사터에서 동서 쌍탑을 만나면 보물이면서 보물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빚을 지고 있는 마음이다.

    합천군 가야면 소재지를 지나면 커다란 화강석에 ‘海印聖地(해인성지)’라고 쓴 비석이 숲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서 있다. 이제 해인사 경내로 들어서니 마음과 자세를 경건하게 하라는 뜻이다. 울창한 숲 사이로 천년 소리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인사 홍류동 매표소를 지나면 최치원 선생이 노년을 지내다 풍광에 빠져 갓과 신발만 남겨 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곳에 농산정이 있다. 정자 밑으로 내려가니 아름다운 바위와 절벽 곳곳에 새겨진 글자들이 즐비했다. 물보라와 굉음을 내며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가 보았다. 옛 사람들은 여름 날 길을 가다가 탁족을 하며 더위를 물리쳤던가 싶다. 홍류동천은 가을이면 붉은 단풍에 물조차 붉게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길상암·약수암>

    절집 답사기행의 진정한 맛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암자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어느 절집을 가도 사람들로 붐비는 큰절보다는 고즈넉한 암자를 찾는 이유이다.

    홍류동천 천년 소리길을 따라 걸으면 해인사 1km 전방 산비탈에 길상암이 자리 잡고 있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백화담을 위시해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길상암은 1972년에 영암 스님이 창건해 위쪽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창건 일화를 보면 자운스님이 1969년 스리랑카 사타티싸 스님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셔왔고 영암스님과 함께 봉안할 장소를 찾다가 이곳을 선택했다. 천진보탑이라 이름 붙인 자연석 큰 바위에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암자를 창건했다. 길상암으로 오르든지 천년 소리길을 걸으려면 홍류동천 길상교를 건너야 한다. 길상암 입구 물소리가 고요한 홍류천에 미륵불, 약사여래불, 불광보탑이 조성돼 있었다.

    이른 아침 발걸음을 재촉하여 해인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해인사에는 말사와 암자가 172개가 있다. 약수암 이정표를 보고 걸음을 옮겨 텃밭을 지나니 석축을 쌓은 곳에 여름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마중을 나온 듯했다. 주차장 인근에는 공부나 휴양을 하며 지내는 요사채가 별도로 있었다. 약수암의 내력은 비구니 수도처로서, 구한말인 1904년에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창건하였고 1927년에는 도삼 스님이 중건하였다. 1972년 법공스님이 선원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처에 해봉과 도삼의 부도가 있어 약수암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암자로 들어가는 문은 보통 주택의 평대문이었다. 평대문에 들어서면 법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약수암 전각은 화려하지 않았으나 정갈하고 깨끗한 모습에서 머무르고 싶은 곳이다.

    법당과 뒤편 축대 위에 약사전이 있다. 법당과 약사전에서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청아한 목탁소리와 함께 고즈넉한 암자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암자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약수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보선 노스님께서 물맛이 좋다고 하며 점심공양을 하고 가라고 했다. 능소화가 곱게 핀 우물 옆 높은 담장으로 가려진 죽림선원이 있었다. 약수암은 스님이 수도하는 전각보다 요사채가 더 많은 절집이다. 공부를 하거나 휴양을 하는 사람들이 10여 명 더 있었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20살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고, 경기도 안양에서 왔다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여름방학 동안 암자에 머문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어른들은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아 휴양을 하고 있었다. 절집의 점심시간은 속세보다 빠르다.


    <삼선암·국일암>

    약사암에서 점심을 먹고 길 건너 삼선암으로 향했다. 삼선암은 1893년에 자홍스님이 창건한 뒤로 1904년에 보찬과 지종스님이 중건했다. 최근에 비구니 선원을 세웠으며 절집의 규모가 커졌고 면모도 새로워졌다. 넓은 암자 마당에는 무더운 여름 바람만 스쳐 갈 뿐 인기척이 없었다. 작은 산모롱이 너머 숨어 있는 국일암으로 향했다. 국일암의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부휴대사의 문하인 벽암 각성대사가 인조 15년(1637년)에 중건했다고 전한다. 벽암스님은 일찍이 글씨와 군법에 능통하여 조선조 인조임금 때에 남한산성을 축성한 공적으로 인조로부터 원조국일대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국일암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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