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03일 (목)
전체메뉴

[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⑩ 유홍준 시인이 찾은 진주 남부산림연구소 대나무숲길

우리 동네 대나무숲으로 갑니다
내 몸속에 푸름이 가득 찹니다

  • 기사입력 : 2012-08-09 01:00:00
  •   
  • 진주 남부산림연구소 대나무숲길.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의 대나무숲. 이곳에는 127종의 대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 황칠나무와 다양한 약초들이 자라고 있다.
    맹종죽·왕대·솜대 등이 자라는 대나무숲길.
    차나무와 편백나무로 조성된 숲길.
    산책로 중간에 만날 수 있는 연못.




    J형.

    하시는 사업은 잘 되는지요? 저는 지금 대나무 숲속에 앉아 있습니다. 온갖 잡무와 생활고와 잦은 음주와 만성피로에 찌든 몸이 정화되는 느낌, 맑은 새소리가 들리고 은은한 죽향이 오염된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시를 쓰고 있습니다만 문학 역시 전투(?)고 삶의 일부이므로 처절하기는 매한가지이지요. 완벽한 휴식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특히나 요즘의 시들은 더욱 그러하지요. 시 역시 시대의 징후이고 반증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당연한 현상이고 귀결이라고 여겨집니다.

    어쨌거나 우리의 몸과 정신은 쉬고 싶어 합니다. 현실을 잊고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합니다. 물고기를 잡고 나물을 캐고 하는 것들이 저에겐 그런 휴식이지요. 아주 단순한 것들을 하거나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것, 저에겐 그 이상의 놀이와 휴식이 없는 듯합니다. 올여름에도 저는 어지간히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강이나 산으로 나갈 수 없을 때 저는 우리 동네 대나무 숲으로 갑니다. 진주시 가좌동 연암공업대학 입구에는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 소유의 엄청난 대나무 숲이 있습니다. 연암공대에서 경상대학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면적이지요. 참으로 대단하고 귀한 보물인데 사람들은 이 숲의 멋과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허만하, 문인수, 고 김양헌 등등 몇 분의 시인들을 모시고 그 대숲에를 가보았는데 하나같이 좋아들 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 전문



    대나무 숲은 제 고향입니다. 사실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이 그렇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대나무밭 속에 묻혀 자랐습니다. 제 고향마을은 대나무밭 속에 동그랗게 모여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보는 것이 대나무였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듣는 것이 대나무 우듬지 위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였습니다.

    진주시 남부산림연구소 대나무숲길을 걸을 땐 허리를 꼿꼿하게 곧추 펴야 합니다. 대숲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히말라야삼나무들도 모두 꼿꼿하게 직립하고 있어서 저절로 몸이 빳빳해지기도 합니다. 잘 만들어 놓은 데크로드를 따라 대숲으로 올라가면 처음 만나는 길은 ‘청풍길’입니다. 정갈하고 새파란 차나무들이 길 양쪽에 총총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차나무와 대나무와 삼나무, 생각만 해도 몸속에 푸른 무엇인가가 가득 차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간혹 한 손에 작은 물병을 쥔 산책자들이 지나가는데 그들은 다 여느 산책자들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들은 다 수행자 같고 멋스러워 보입니다. 오늘은 엄마와 아이 둘을 만났는데 그 그림도 멋져 보입니다. 아직 유치원에도 들어가지 않은 듯한 꼬마아이는 대밭 속으로 난 데크로드 위를 뜁니다. 유연하고 자유롭고 구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아이들은 어디에나 다 잘 어울립니다. 대나무는 하루에 최대 1m가 자라는 성장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자주자주 이 대밭 속으로 데리고 오면 저 아이들의 몸속에도 푸르고 곧고 정갈한 대나무가 들어설 것입니다.

    대숲에 들어서면 온갖 새소리가 들립니다. 다양하고 독특하고 멋진, 노래를 하는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면 어떻습니까. 어쨌거나 저 아름다운 새소리는 우리들의 몸속으로 들어와 스밀 것이고 자연의 소리를 자주 듣다 보면 ‘청호무성(聽呼無聲)’, 없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연암공업대학 뒤 대숲에는 엄청난 수의 왜가리떼가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백로가 아니고 학이 아니고 왜가리떼지만 푸른 대숲에 깃든 하얀 왜가리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자아냅니다.



    왜가리는 줄넘기다.

    왜가리는 구덩이다.

    왜가리는 목구멍이다.

    왜가리는 납치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테이블은 하나다.

    테이블은 둘이다.

    테이블은 셋이다.

    테이블은 숲 속에 놓여 있다.



    손을 들고

    숲이 출발한다.

    테이블은 없다.



    테이블 위로 왜가리는 도착한다.

    걸어 다니는 테이블 위로 왜가리는 뛰어든다.



    테이블은 부서진다.

    숲이 출발한다.



    왜가리는 하나다.

    왜가리는 둘이다.

    왜가리는 셋이다.

    왜가리는 없다.



    왜가리는 숲 속에서 왜가리 놀이를 한다.



    -이수명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전문



    맞습니다. 숲은 아이들에게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남부산림연구소 가좌시험림에는 맹종죽, 오죽, 구갑죽 등의 대나무 127종, 환경정화수종 후박나무 등 864본, 지역수종 황칠나무 외 151수종 397본, 조경수종 189본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약초원에는 식용 88종, 약용 96종이 심어져 있어 아이들의 학습자료로도 아주 훌륭한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나무이름 그거 금방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 않던가요.

    맞아요. 학습을 하듯 나무나 풀이름을 외우면 숙지가 안 되지요. 이름을 알기 이전에 그것들과 합일하고 그것들과 어울리고 그것들의 특성과 변화를 잘 알면 그 이름이야 나중에 그저 저절로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 이름들을 설사 모른들 어떻습니까.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세상을 이해하는 데도 사람을 이해하는 데도 썩 훌륭한 태도와 인식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J형. 덥다덥다 하지만 여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언제 이 멋지고 고풍스러운 대나무숲엘 한 번 오시지요. 연인과 함께 걸어도 좋고 가족과 함께 걸어도 좋은 이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삶의 고민과 시의 고민을 이야기해 봅시다. 수목전시원 안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우리들의 일그러지고 못난 얼굴을 비춰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거기 연못가에 앉아서 우리들의 잘못된 삶을 반추하고 바로잡아 봅시다. 늘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글·사진=유홍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