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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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인물탐구] (9) 민주통합당 문재인

인권변호사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노무현 그림자’
경희대 학생회 간부로 반유신 시위 이끌다 구속 수감·제적
특전사서 표창 받은 ‘A급사병’… 시위 전력 판사임용 좌절

  • 기사입력 : 2012-08-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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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가 지난 9일 경기도 광주 팔당 수질개선본부 선착장에서 팔당호의 녹조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운명’이라는 단어만큼 민주통합당 문재인(59) 후보의 삶을 잘 나타내는 단어가 있을까.

    문 후보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원했던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그때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다. 두 변호사는 만난 그날 합동법률사무소를 시작한다. 사상공단 여공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무료변론을 하는 등 인권변호사의 길을 나란히 걷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로, 문 후보는 부산에서 노동·인권변호사 역할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할 만큼 둘 사이는 각별했다. 지금도 문 후보는 ‘노무현 그림자’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법무법인 부산의 변호사로 돌아간 문 후보는 2009년 5월 23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미안해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는 유서를 남긴 운명 같은 벗을 보내야만 했지만 상주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난 4·11총선에서 ‘운명’처럼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2010년 부산시장 출마, 2011년 김해을 재보선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는 마치 ‘운명’인 것처럼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문 후보는 1953년 함경도 흥남이 고향이던 부모님이 거제로 피란왔을 때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온통 눈덮인 순백의 고향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따뜻한 남쪽나라’ 거제의 푸른 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더라고 몇 번이나 되뇌기도 했다. 피란민이었던 만큼 어린 시절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지낸 문 후보의 아버지는 포로수용소 노무일을 했고, 어머니는 계란을 떼어다가 부산까지 건너가 파는 행상을 했다. 조금씩 돈을 모아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아버지의 장사 실패 등으로 부산에서의 삶도 어려웠다. 영도의 신선성당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것을 배급받은 인연으로 문 후보의 어머니는 가톨릭에 입교했고, 문 후보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세를 받았으며, 훗날 이 성당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경남중·고 시절 공부보다 책을 더 좋아했다. 시험기간에도 학교도서관에서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을 정도였다. 그 당시 문 후보의 별명은 ‘문제아’였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생겼지만, 고등학교 때는 별명에 걸맞은 행동을 많이 했다. 사회에 대한 반항심도 생겼으며, 친구에게 시험답안을 알려주다 정학을 당했고, 술·담배로 인해 정학을 받기도 했다.

    1975년 대학가에서는 반유신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경희대 학생회 총무부장이었던 문 후보는 그해 4월 대규모 시위를 이끌면서 구속·수감됐다. 학교에서도 제적당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이른바 ‘강제징집’을 당했다. 자대배치 후 특전사로 배치받았으며 6주 후반기교육에서 폭파 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 등을 받아 A급 사병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군대에서 새삼 발견한 것은 군대가 요구하는 기능을 상당히 잘해내는 편이라는 사실이었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군대 시절 ‘꽃’에 대한 추억도 있다. 첫 면회 때는 지금도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만, 당시 연애 중이었던 부인 김정숙 씨는 안개꽃 한 아름만 안고 왔다. 이들의 순수했던 사랑은 감옥 면회, 군대 면회, 사법시험 공부하던 절(해남 대흥사)로 면회가 이어지고 결혼으로 결실을 맺었다.

    1978년 제대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사시를 준비해 이듬해 1차에 합격했다. 하지만 부마항쟁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등을 겪으며 준비도 제대로 못한 채 2차 시험을 쳤다. 1980년 복학 후 전두환 군부를 막기 위해 민주화투쟁에 앞장섰기에 유치장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듣고, 전무후무한 유치장 내에서 소주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인권변호사였던 문 후보의 인생도 바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시켰으면 끝까지 책임지라”고 그를 설득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그는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는 네팔에서 안나푸르나를 산행하던 중 우연히 영자신문을 보고 소식을 알게 돼 바로 귀국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아 ‘30년 우정’을 지켜 나갔다.

    문 후보는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출마선언을 통해 “보통사람이 주인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공평과 정의가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처럼 탈권위주의를 강조했으며, 지역균형발전을 주창했던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겠다고 나섰다.

    19대 총선에서 맞붙었던 손수조 후보가 “젠틀하고 훈훈한 이미지”라고 평가를 할 만큼 부드럽게 보이지만,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격파시범을 보이며 강인한 이미지도 제시했다.

    그는 친노그룹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이른바 ‘낙동강 벨트’ 구축에는 실패했지만 민주통합당이 40%대의 득표율을 거두는 ‘절반의 성공’을 가져왔다. 또 그 선거에서 20여 명의 친노계 전·현직의원들이 국회에 입성하며, 문 후보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노무현재단 이사장 퇴임사를 통해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놓지만 그의 정신·가치·신념·원칙만은 여전히 놓아버릴 수 없기에 이어가겠다”며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주인인 나라, 노무현이 꿈꾸던 그 나라를 만들어 그 앞에 놓아드릴 것이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공과를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는 그의 대선을 향한 도전이 어떻게 노 전 대통령을 넘을 것인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권태영 기자 media98@knnews.co.kr


    ☞ 그는 누구

    △거제 출생(1953년)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문 후보 한계

    비서실장 이미지 여전...명확한 정치노선 부각 못해


    비서실장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해 명확한 정치노선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국정을 배웠다고 하지만 참모의 위치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점에서는 ‘배신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책임감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책임감 논란은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 과정에서도 거론됐으며, 본 경선뿐만 아니라 만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후라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에 “참여정부는 부산 정권인데 왜 부산시민들이 안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으로 호남 민심을 잃은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아직 문 후보의 호남 지지세는 약한 편이다.

    중·노년층의 지지율이 낮아 문 후보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간 양자 대결 구도일 경우 과거에 대한 향수가 크고 표 결집률이 높은 연령대의 지지를 받는 박 후보보다 불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입문 과정에서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권력 의지가 유권자들에게 희박한 것처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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