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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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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남강 산책- 이정하(수필가)

  • 기사입력 : 2012-08-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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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질녘이면 강으로 간다. 천천히 걸어 남강에 도착하면 가슴이 열린다. 그곳에 있었던 바위계단이며 물푸레나무가 나를 반기고 청포가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또 나를 반긴다.

    소리 없이 흐르는 물길을 거슬러 ‘습지원’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강변에 늘어진 수양버들이 몸을 반나마 물에 담그고 물고기를 불러와 쉬게 하고, 좁은 길옆 대나무 숲에서는 소소한 바람이 인다.

    한적한 이 길에 요즈음 공사가 한창이다. 도시가 팽창해지면서 진양호 댐 아래쪽까지 아파트가 땅을 약탈하느라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새로 짓는 아파트와 인접해 있는 습지원도 자전거도로를 내고, 그냥 둬도 될 산책로를 만들고, 운동기구를 설치하느라 돈들이 바쁘다. 나긋하고 호젓하던 길을 허물고 반듯한 길 내기에 여념이 없다.

    수양버들이 사라지고 그 많던 찔레넝쿨이 없어져 버렸다. 자연보다 인위적인 것에 우월감을 느끼는 도시 사람들. 자연의 고마움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그것쯤이야 삶에 대수롭지도 않아 함부로 버리는가. 댐 아래 습지원에 살던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간다.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던 작은 물고기와 여러 풀꽃과 하얀 찔레꽃. 대숲에서 노래하다 건너편 산으로 놀러 다니던 새들은 어디서 쉬어야 하나.

    습지원을 생태적인 원형 그대로 두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 갈 생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지켜 볼 일이다.

    왔던 길을 돌아서 ‘천수교’까지 갈 요량으로 걸음을 빨리 한다. 사람들이 어깨를 강물에 기대고 사색에 잠긴 채 산책하고 있다. ‘희망교’를 지나고, 지난봄에 유채꽃이 남강을 꾸며주었던 풀밭을 지날 때 몇 걸음 앞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가 있다.

    앞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고, 혹여 강아지가 지나는 이들에게 걸리지나 않을까 조심하는 것이 미소롭다. 한 손에는 줄, 한 손에는 비닐봉투와 긴 나무젓가락이 들려 있다. 강아지가 한 곳에 변을 보자 그것을 봉투에 담는다. 다른 강아지의 것도 보이는 대로 봉투에 주워 담았다.

    그러고 보니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고운 옷을 입히고 머리핀까지 꽂은 강아지가 주인을 따라 졸랑졸랑 앙증스럽다.

    목에 줄 없는 강아지는 천방지축으로 뛰고 달린다. 방목한 채로 내버려 두는가 싶었는데 ‘엄마 간다아’ 크게 소리친다. 강아지 같은 개가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간다. 여자가 십년지기 반기듯이 개를 맞는다. 나는 웃음이 나온다. 그의 손엔 스마트폰 하나만 달려 있다.

    건장한 남자가 송아지만한 개를 끌고 간다. 목에 걸린 줄을 이리저리 당겼다 늦추었다 하며 개가 사람을 끌고 가기도 하고, 사람이 개를 끌고 가기도 한다. 개가 잔디밭에서 배설을 한다. 뒤를 본 것이 후련한지 꼬리를 흔들며 남자를 끈다. 그때 비닐봉투를 든 이가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왜 그냥 가세요? 치우고 가셔야죠! 작은 배설물이면 제가 치우겠는데 그건 안 되겠어요. 여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밟으면 어떻겠어요?”

    남자는 치우는 도구를 갖고 오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내일 갖고 와서 치우세요.”

    약속을 받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또박또박 말하는 그가 얼마나 당차고 멋있던지 감동적이었다.

    누군가가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앞에서도 잘 모르는 것을, 뒷모습을 보고 무엇을 알 수 있으랴만, 사람의 됨됨이는 앞이든 뒤에서든 나타나기 마련인가 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를 만난 남강 산책길, 촉석루 위에 말간 별이 떴다.

    이정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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